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조지, 이걸 알아야 해요. 우크라이나는 실질적인 나라가 될 수 없소. 그 땅의 일부는 동구권이고 대부분은 우리 거였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찬회동 때 던진 한마디다. 2008년 4월 3일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있었던 해프닝이다. NATO정상회의가 "과거 소련연방에 속했던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회원국 가입신청을 환영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난 이후여서 푸틴은 화가 나 있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크라이나는 유럽 안보의 화약고나 마찬가지다.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까? 지금 세계는 푸틴이 군사작전 버튼을 누를지 주시하고 있다. 푸틴은 나토의 동구권 확장을 중지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 연말 10만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지대로 배치했고, 북쪽으로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벨라루스에 병력을 파견했다. 또 흑해함대에 1만8000명의 군사력을 배치해 3면협공 태세다.

나토동맹국들도 폴란드 에스토니아 등 러시아 접경지역 병력을 증강해 긴장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나토를 주도하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3억달러 군사원조예산을 배정하고, 병력 8500명을 추가 파견할 태세를 갖췄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건드리면 터질 듯한 상황이다.

미국을 수렁에 빠뜨리고 싶어하는 푸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의 방아쇠를 당기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군사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단시간에 압도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푸틴이 방아쇠를 당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왜냐하면 전투에서 이길지는 몰라도 미국 중심의 나토체제를 강화하게 되고 러시아는 경제제재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러시아는 이렇게 군사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옥죄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현재 워싱턴 부르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피오나 힐이 1월 24일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 '푸틴은 미국을 유럽에서 쫓아내기를 원한다'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녀는 러시아에 유학한 영국계 미국인으로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3명의 대통령 백악관 안보실에서 소련과 동구문제 전문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한 정보 베테랑이자, 부쿠레슈티 푸틴-부시 만찬회동 배석자였다.

힐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푸틴 대통령의 권력 속성에서 기인한다고 해석한다. 우크라이나가 뒷문을 열어 나토를 끌어들이는 것은 러시아에겐 안보위협이다. 그러나 푸틴은 이 기회에 우크라이나 사태의 긴장 수위를 높임으로써 미국과 그 핵미사일을 유럽 땅에서 쫓아내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30년 전 우크라이나를 비롯 구 소련이 15개 개별국가(CIS)로 해체됐던 수모를 앙갚음할 때가 왔다고 푸틴은 생각한다. 당시 러시아는 독일 폴란드 등 동구권에 주둔했던 대규모 군대를 철수했던 것처럼 이번엔 미국 차례라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 아래서 미국은 국내정치 문제가 곪았고, 아프간 철군으로 동맹의 신뢰가 깨졌다. 더구나 미국은 4년마다 선거를 치르며 여론이 극도로 분열된다. 반면 푸틴은 1999년 집권 이래 22년간 권력을 공고히 해왔고 2024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2036년까지 권력을 독점할 통로를 열게 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미국이 빠질 수렁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러시아는 미국에 대한 압박을 유럽문제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일본에 미군기지를 가질 정당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아시아 태평양에서 미국의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 초음속 미사일을 미국 뒷마당인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보낼지도 모른다고 미국을 은근히 위협했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상기시키는 도전이다.

힐은 러시아가 현재 상황을 주도한다고 본다. 미국의 선택은 유럽동맹국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상황을 나토편으로 끌어들여 장기전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전략이 실패하면 이 싸움이 유럽에서 미국 군사력 종언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푸틴은 20여년간 4명의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면서 미국 지도자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국내정치 문제와 미중 패권경쟁의 무거운 짐을 진 80세의 바이든 대통령이 힘겨워 보인다. 물론 미국은 싱크탱크가 움직이는 나라이긴 하지만.

자본시장 동요 등 한국도 영향권

우크라이나는 한국에서 7000㎞ 이상 떨어진 동구권 국가다. 한국과 큰 이해관계가 없는 나라인 것 같지만 2022년 벽두부터 우크라이나에 감도는 러시아와 미국의 충돌 불안감이 한국 사회에도 스며들고 있다. 여의도 자본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국민들은 석유값이 뛸까 걱정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충돌이 일어난다면 한국의 정치지형에도 파도를 일으킬지 모른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나는 세상이다.

김수종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