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시티·채권 계획 … 독일 슈피겔 "국민 전반에 혜택 돌아갈지 의문"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의 28세 젊은 농부이자 여행가이드인 에릭 카스트로는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팬이다. 그가 사는 마을 '앨 시티오 사포판'엔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게 없다. 마을사람들은 현금의 힘을 믿는다. 은행에 넣기보다 장롱에 쌓아두길 좋아한다. 하지만 이웃마을 '수치토토'의 상점과 식당에서 비트코인을 받는다. 카스트로는 최근 이곳에서 빵을 사고 전자지갑앱 '치보'(Chivo)를 통해 0.00010772비트코인을 지불했다. 대략 5.45달러다.

카스트로는 "비트코인이 미래라고 믿는다"며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이들이 디지털로 거래하기까진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국 엘살바도르가 갱단과 폭력이 아닌, 최신 기술의 중심지로 전세계에 대서특필되는 상황이 자랑스럽다.

엘살바도르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엘살바도르는 과거 '자국민이 등지는 나라'로 알려졌다. 삶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 중미의 가장 작은 나라인 엘살바도르의 인구는 650만명이다. 그중 300만명은 해외에 거주한다. 주로 미국이다. 40세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엘살바도르를 비트코인국가로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달러가 유일한 법정화폐였지만 부켈레 대통령은 지난해 비트코인을 법화에 추가했다. 미국의 통화정책에 흔들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부켈레 대통령은 이를 '가난탈출의 방편'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자국을 금융혁신과 여행의 중심지로 만들어 수천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한다. 동시에 비트코인으로 금융포용성을 촉진하고자 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인구 30%만 은행계좌를 갖고 있다.

부켈레는 자신을 '기술 전도사'로 내세운다. 야구모자를 쓰고 가죽재킷을 입는다. 소셜네트워크를 정치적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며 자신을 '엘살바도르의 CEO'로 칭한다. 실리콘밸리 스타일을 섭렵한 그는 신속한 개혁을 부르짖는다. 반대나 회의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무시하고 비판적인 언론은 공격한다. 군대를 의회 앞까지 진출시켜 안보개혁을 위한 예산을 통과시키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전통적인 정치적 문법을 깨는 독불장군이지만 지지율은 85%에 달한다. 게다가 전세계 암호화폐 팬들로부터는 '선구자'로 환영받는다. 지난해 6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비트코인2021 컨퍼런스'에서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도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며칠 뒤 의회에 관련 법률을 제출했다. 그가 속한 당이 다수당이었다. 2021년 9월 법안이 통과됐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엘살바도르 동남쪽 콘차구아 화산의 자락에 비트코인시티 건설을 계획중이다. 엘살바도르 정부가 인프라를 제공하고 국내외 투자자들이 사무실과 아파트, 쇼핑센터를 짓는다. 도시 운영 에너지는 화산의 지열을 활용할 계획이다. 엘살바도르는 170개의 화산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자체적으로 비트코인을 채굴할 방침이다. 비트코인시티 인프라 건설 재원은 비트코인채권을 발행해 조달된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선도 상당하다. 비트코인시티가 들어설 콘차구아 화산 인근에 사는 31세 보안요원 넬손 로사는 비트코인시티의 소문만 무성할 뿐 가시적인 개발 진전은 없다고 말한다. 현재까지 바뀐 것은 산 정상에 이르는 도로가 재포장됐을 뿐이다.

로사는 "비트코인시티는 '유령'으로 남았다. 나와 같은 일반인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들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비트코인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국가가 운영관리하는 전자지갑앱 치보를 내려받지도 않았다. 이 앱은 첫 이용 때 약 3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준다. 일종의 인센티브다.

많은 도우미들이 기술 이용에 취약한 시민들이 치보앱에 등록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많은 도시에 이와 관련한 안내소가 설치돼 있다. 또 전국적으로 약 200개의 치보 현금인출기(ATM)가 설치됐다. 이곳에서 비트코인과 달러를 교환하거나 디지털 포인트를 구매할 수 있다.

미국 주요 도시에도 약 60여개의 치보 ATM이 설치됐다. 미국으로 이민 간 엘살바도르인들이 고국의 친인척들에게 송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해외 송금액은 엘살바도르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치보앱을 도입하기 전 송금 서비스 제공기업들은 송금액의 약 10%를 수수료로 떼갔다.

엘살바도르 정부와 함께 치보앱을 개발한 미국 기업 아테나스는 "치보앱은 약 400만명의 유저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이용자들은 첫 이용시 정부가 제공하는 비트코인을 소비하는 선에서 그친다. 치보 ATM을 지키는 한 경찰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30달러를 인출하고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인들도 "엘살바도르인들 중 사실 비트코인으로 일상생활의 지출을 결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독일 암호화폐 전문가로, 비트코인의 오프체인 거래 솔루션 스타트업 '풀모'(fulmo)의 창립자인 제프 갈라스는 "엘살바도르 전역이 비트코인을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향후 2년 내 모든 이들이 비트코인을 사용할 것 같지도 않다"면서도 "하지만 엘살바도르의 준비시간이 매우 짧았음을 고려한다면 성공적인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엘살바도르정부는 진행속도를 다소 늦춰 치보앱의 결함을 고치거나 비트코인과 관련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치보앱의 소프트웨어 보안 결함으로 시민 수백명이 피해를 입은 신용사기 사건이 벌어지거나 송금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 활용도가 가장 높은 곳은 해안마을 '엘 손테'다. 비트코인이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했다. 3000명이 거주하는 이 마을은 전세계 암호화폐 팬들이 모여드는 디즈니랜드 축소판이기도 하다. 키오스크와 식당, 호텔, 상점, 카페 등이 비트코인 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심지어 쓰레기통에도 노란색 'B' 문양이 새겨져 있다.

주민들이 비트코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엘 손테 출신 3명의 인사들이 13년 동안 이곳 젊은이들에게 영어와 IT, 서핑 등을 가르치는 사회적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어부의 자식들로 사는 것보다 더 나은 경제적 풍요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더해 이곳으로 이주해온 한 미국인이 비트코인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렸고 익명의 기부자들이 암호화폐 도입을 위해 대규모의 재정적 후원을 감행했다. 한 스타트업은 이 마을의 가상지갑을 프로그래밍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엘 손테 마을 사람들은 현금지원금 대신 휴대폰으로 비트코인 포인트를 얻었다. 점점 더 많은 상점들이 비트코인을 받아들이는 강력한 동기가 됐다.

엘 손테 사회적 프로젝트 추진단에서 일하는 21세 마벨 알바레즈는 "비트코인으로 삶이 전반적으로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으로 월급을 받고 전기료, 대학 수업료 등을 디지털로 납부한다. 휴대폰으로 어머니에게 돈을 송금하고 일부는 저축한다. 그는 "비트코인 혁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은행계좌를 갖지 못한 사람들도 저축을 할 수 있게 된 점"이라고 말했다.

부켈레 대통령의 비트코인 캠페인으로 엘 손테는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 전세계 비트코인 팬들이 이곳에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의 모든 이들이 비트코인에 긍정적인 건 아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55세 마마 블랑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작부터 비트코인을 받았다. 음식배달 서비스로 상당한 돈을 벌고 있었는데,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면서 800달러를 잃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비트코인의 변동성을 두려워한다. 하루 수달러의 벌이를 하는 이들에겐 비트코인 가치의 작은 변화도 큰 손실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비트코인이 법화로 등극한 이후 수도 산살바도르에선 비트코인 가치 하락에 따른 여러 항의시위들이 있었다.

정부의 비트코인 프로젝트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납세자의 돈을 비트코인 투자로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매체에 따르면 국가부채가 심각한 엘살바도르는 현재까지 국가재정 7000만달러를 들여 1370개의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또 약 10억달러 규모의 비트코인국채 발행을 계획중이다. 그중 절반은 비트코인시티 건설자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비트코인 투자에 쓰일 전망이다. 이 채권을 산 투자자들은 매년 6.5% 수익을 받는다. 5년 뒤 비트코인 가치가 상승한다면 배당금도 받는다.

엘살바도르 싱크탱크 '경제사회개발재단'(Fusades)의 법무국장인 마조리 초로 데 트리구에로스는 "정부는 비트코인과 관련한 재원조달 원천이나 용처에 대해 불투명하다"고 비판했다.

중남미 전문가로 베를린자유대학 경제학 교수인 크리스티안 암브로시우스는 "정부가 공공자금을 갖고 도박을 해선 안된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는 한 낙관론이 많겠지만, 그런 흐름이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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