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게임기업 넥슨의 창업자는 카이스트 석사 출신 세명이다. 그중 한명은 석사과정 중 이미 다른 게임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박사과정 진학에 관심이 없었으나 두명은 박사의 뜻을 품고 1993년 겨울 어느날 필자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그중 한명은 그후 필자 문하생으로 기본 소프트웨어(SW) 전공의 논문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아직도 기본SW를 업으로 하고 있다.

다른 한명은 진학과 창업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 채 면접을 마치고 나갔다. 그는 그로부터 반년 뒤 오피스텔에서 친구들과 넥슨을 창업했다. 그가 바로 김정주다. 당시 '게임보다는 더 기본적인 걸 하지'하는 아쉬움이 필자 뇌리에 남았다.

1994년 창업과 더불어 '바람의 나라'라는 온라인 게임 하나로 넥슨은 일약 국내 3대 게임사로 자리잡았다. 넥슨은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을 거듭했고 그는 결국 국내 재산 순위 2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다가 회장으로서 2005년 처음 모습을 드러내어 '은둔'이란 수식어가 애초부터 그에게 붙어다녔다. 국내 기업공개 대신 글로벌 진출의 포석으로 일본증시에 2011년 상장하는 일도 그런 이미지 형성에 일조했다.

그러던 중 2016년 3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진경준이란 검사장(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법조인 재산 1위로, 그의 재산 대부분이 넥슨주식을 통해서 얻은 것이라는 사실이 공개돼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내부정보 사전입수 여부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서 진 검사는 곧바로 뇌물수수 혐의로 긴급체포돼 해임됐다.

이른바 '진경준 게이트'로 불린 이 사건에서 김 회장은 20년 지기 대학동기 진 검사에게 넥슨 비상장주식 매입용 자금을 훗날의 보험조로 2005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진 검사는 무자본으로 넥슨 비상장주식을 매입한 후 넥슨재팬 상장주식으로 교체해 결국 120억원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 회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2018년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기본SW를 겨냥했다면 달라졌을 것들

그러나 판결을 기점으로 그의 삶은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판결 후 1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반년 후에는 내부 논의없이 전격적으로 회사 매각에 들어갔다. 중국 등 국내외 게임사가 달려들었으나 가격 조정에 실패하면서 2019년 6월 매각은 수포로 돌아갔다.

뇌물 의혹에다 지분을 고수하며 은둔경영을 펼쳐온 김 회장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실제 김 회장 부부는 회사지분을 90% 이상 보유했다. 평소 지분에 집착하면서 기업경영과 무관한 친구에게는 지분을 그냥 거저 준 것으로 드러나 김 회장을 불신하는 움직임이 내부적으로 생겼다. 직원 사기가 떨어지는 와중에 별세 비보가 떴다.

필자가 기억하는 그는 무언가 생각이 떠오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두했던 학생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최근 몇개월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있던 평소와는 달리 자신이 평생 일궈온 게임SW산업에 대한 회한으로 인해 어디론가 은둔하고자 하는 심정이 커졌을 것이다.

경영상 모순이 있었지만 SW산업사에서 그의 존재는 SW 국산화에 한 획을 그은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SW 불모지를 개척해 국산상품의 열매를 처음 거뒀다. 인터넷산업 태동기 1990년대 초 번듯한 SW 국산품 하나 없던 시절 대규모 게임SW 국산화를 이룬 업적은 대단한 것이다. 그는 호기심이 많아 관심이 쏠리는 것에는 무엇이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학생이었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대학 마지막 학기에 학점관리 소홀로 합격해놓은 대학원 입학에 실패했던 일화도 있다. 그의 삶은 짧았지만 굵게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회환이 남는 대목은 게임SW가 아니라 기본SW를 겨냥했더라면 하는 점이다.

게임은 응용SW이지 기본SW는 아니다. 기본SW란 PC의 윈도우처럼 운영체계(OS)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게임SW가 기본SW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윈도우같은 OS 위에서 돌아가야만 하는 기술적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인수위에 SW전문가 한명 없는 것이 현실

창업시부터 기본SW에 도전했더라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기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국산SW 세계시장 점유율이 1% 벽을 넘어가는 쾌거도 있지 않았을까. 한국의 점유율은 수십년째 0.8%선이다.

그가 '제2의 디즈니월드'에 도전하고 나선 것만으로도 모험이었지만 애초부터 '제2의 애플'의 꿈을 펼쳤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길 없다. 국내 SW산업은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하다. 그의 타계가 정부의 SW 무관심이 얼마나 심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에 SW전문가가 한명도 없는 것을 보면 정부에게는 SW에 관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30년 전 넥슨의 도전정신을 본받아 이제는 OS같은 기본SW에 도전하는 청년과 기업이 이 땅에서 나와야 할 때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