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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김수종 칼럼]

푸틴 얕잡아 봤던 미국 대통령들

등록 : 2022-04-20 12:03:28

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우크라이나전쟁이 두달째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과 군의 저항과 전투력이 예상외로 강해서 러시아군의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자, 서방언론들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곤경에 처했다고 분석한다. 또한 이번 전쟁으로 독일을 비롯 유럽연합 국가들이 군비확장과 나토 동맹체제 재정비에 나섬으로써 유럽안보망이 튼튼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계속 나온다.

맞는 말들이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웅으로 부각됐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국토가 초토화됐고 1000만명에 육박하는 피난민이 생겼다. 유럽의 에너지가격은 치솟았고, 에너지 파동의 고통은 지구촌 전체로 번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밀과 보리 등 식량을 수입하던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식량난에 직면하게 된다.

21세기 초연결 세계화 시대에 우크라이나전쟁은 사전에 막을 수 없었을까? 푸틴이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며, 서방은 그것을 왜 눈치채고 대비하지 못했을까? 이런 의문이 러시아 전문가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전문가 조언 무시한 부시와 오바마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4월 11일자에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3명의 전직 대통령이 푸틴과 우크라이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서 일했던 푸틴 전문가 피오나 힐(56)의 증언을 통해 그 비화를 보도해 관심을 끌었다.

영국계 미국인인 힐은 세인트 앤두르스 대학에 다닐 때 교환학생으로 모스크바에서 소련 역사를 공부한 후 1989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러시아 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당대 최고의 푸틴 전문가다. 2005년 부시 대통령 때 국가안보위원회 정보분석관으로 백악관에 들어가 오바마 대통령 초기까지 일했다. 그는 2017년 다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NSC의 러시아 담당 부국장으로 근무했다.

힐은 2008년 부시 대통령 말년에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나토정상회담을 앞두고 백악관 준비회의에 호출됐다 정상회의 의제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회원국 자격취득 문제가 떠오른 때였다. 힐은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앞에서 "이들 두 나라에 나토회원국 자격을 부여하면 문제가 생긴다"며 독일 등 나토가맹 국가들이 푸틴의 캐릭터에 유의하며 주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체니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반대한단 말이냐"고 화를 냈고 부시는 "두 나라 나토회원 자격부여 계획을 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쿠레슈티 나토정상회의는 시기와 방법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환영한다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특별초청국으로 회의에 참석했던 푸틴은 그날 밤 만찬미팅에서 부시에게 "우크라이나는 나라가 될 수 없소. 그 동쪽은 러시아 땅이고 서쪽은 폴란드 땅이란 말이요"라고 노골적으로 항의했다.

힐은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에서도 같은 업무를 맡았는데, 오바마도 푸틴을 얕잡아 보는 태도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2013년 푸틴과의 관계를 질문받는 방송인터뷰에서 오바마는 푸틴을 지칭하며 "무능한 친구, 교실 뒤편에 앉아있는 따분한 애"라고 평했다. 힐은 이때 가슴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고 회고했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 오바마의 반응은 "주변국이나 위협하는 지역세력"이라며 푸틴을 과소평가하는 것을 보고 힐은 또 속으로 한탄했다고 한다. 힐은 오바마에게 "그 친구(푸틴)를 업신여기지 말라. 신경과민이고 모욕을 못 참는 사람이다"고 조언했지만 오바마는 그 충고를 무시했다.

트럼프는 푸틴을 치켜세우며 러시아 커넥션을 만들어 자신의 선거운동에 유리하도록 악용했다. 그는 미국내 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보다 푸틴의 말을 더 신뢰했다.

2017년 우크라이나의 페트로 포로쉔코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은 정당하다며 그 이유를 "그곳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포로쉔코가 "나도 러시아어를 쓴다"고 받아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22년간 같은 자리에서 미국 지켜본 푸틴

트럼프가 2024년 유력한 대선후보로 미국에서 세를 확장하고 있다. 다시 그가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 입성하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힐은 "푸틴은 22년간 그 자리에 있다. 그는 옛날과 꼭 같은 사람이고 그 주변 사람들도 꼭 같다. 그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힐과 같은 푸틴 전문가의 눈에 미국의 대통령들은 서투른 몸짓으로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의 책상 위에는 핵무기 옵션(선택)이 놓여 있다. 우리는 3차세계대전 안에 들어와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후 나온 피오나 힐의 논평이 가슴에 와 닿는다.

김수종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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