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빅5 등 검증된 대마불사에 관심 … 긱경제·암호화폐 기업들은 불안

기술주식과 기업공개(IPO),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스타트업 가치, 심지어 가상화폐까지 거의 모든 곳에서 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 수년 동안 아찔할 정도로 높이 올랐던 자산들은 이제 추락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기술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얼마나 요란할지, 그리고 어느 업종이 다시 부풀어오를지는 알기 어렵다"고 전했다.

기술주식 하락이 가장 눈에 띈다. 나스닥 100대 기업들의 지수인 NDXT는 지난해 11월 정점 이후 1/3 하락했다. 이 지수에 속한 기업들은 시가총액 2조8000억달러를 잃었다.

최근 상장을 통해 고공비행하던 스타트업 역시 타격을 입었다. 온라인 주식거래 플랫폼 업체인 로빈후드 주가는 2021년 7월 상장 당시 가치에서 80% 이상 하락했다. 홈 트레이닝 플랫폼 펠로톤 주가는 절정 당시 가치에서 90% 이상 하락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신규 상장된 스타트업 기업들의 주가는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38% 하락했다.

IPO 저수지도 마르고 있다. 지난해 1~4월 미국에서만 약 150개의 기업들이 상장됐다. 대부분은 기술기업이었다. 올해 상장된 기업은 30개에 불과하다. 상장한 뒤 합병할 스타트업을 찾는 기업 SPAC 호황도 꺼지고 있다. 2018년 이후 상장한 1000개 이상의 SPAC 기업 중 오직 1/3만 합병대상 기업을 찾았다. 최고 가치 25곳의 SPAC를 추적하는 한 지수에 따르면, 이들 SPAC들은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시가총액 56%를 잃었다.

기술주가 무너지면서 비상장 기술기업들의 가치도 함께 하락하고 있다. 리서치기업 CB인사이트에 따르면 기술 스타트업들은 지난해 전세계에서 3만4000건 이상의 거래를 통해 약 6280억달러를 모았다. 올해 1~3월 거래 수는 전년 동기 대비 5% 하락했고 투자액은 19% 하락했다. 이는 2012년 이후 분기별 최대 하락이다.

유니콘기업을 이끌던 거물 투자기업들도 큰 손실을 입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이달 12일 '지난 1년 동안 330억달러 손실을 봤다'고 공시했다.

가상화폐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이달 12일 암호화폐 대표주자인 비트코인은 개당 2만6000달러 이하로 거래됐다. 지난해 11월 초 정점 대비 절반 이하의 가치다. 다른 디지털화폐는 더 큰 손실을 보고 있다. 거래규모 2~5위의 가상화폐는 정점 대비 70% 이상의 가치를 잃었다. 최근 각광 받았던 대체불가능토큰(NFT)도 불안하다. NFT 장터인 오픈시(OpenSea)에서 이더리움으로 거래된 NTF 매출은 최근 수주 동안 절반 이상 하락했다.

최근 수년 동안 여러 요소들이 기술 호황을 이끌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이의 삶과 일이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팬데믹 극복을 위한 각국 정부의 부양책은 기술 수요를 크게 늘렸다. 게다가 초완화 통화정책으로 투자자들은 기술기업의 장기적 성장성을 보고 적극 투자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투자은행 에버코어ISI 분석가 마크 머헤이니는 "사람들이 이제 컴퓨터 화면을 떠나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극심한 불확실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전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에 고통받고 있다. 경기침체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고 말했다.

게다가 기준금리가 오르고 있다. 금리인상은 경기후퇴를 촉발할 가능성 뿐만 아니라 기술기업이 내는 이익의 현재가치를 줄인다. 기술기업 이익의 대부분은 상당히 먼 미래를 내다보고 산정된다.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는다면, 각국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더 많이 인상할 것이다. 이는 기술주에 추가적인 압력을 가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악화될까. 최근 주식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지만 아무도 바닥이 어디인지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시장이 과거 수년 동안 과열된 것처럼 향후 수년 동안 침체될 수도 있다. 또 다른 투자은행 웨드부시의 대니얼 아이브스는 "기술업계는 갈림길에 섰다"며 "금리가 상승하면서 투자자들이 보다 위험한 성장주에 등을 돌리고 확실히 검증된 몇몇 기술기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기업인지는 뻔하다. 미국 기술기업 빅5를 구성하는 알파벳과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주가는 지난해 11월 이후 약 25% 하락했다. 최근 1분기 실적보고서도 이전 분기보다 약세인 점이 확연했다. 그럼에도 빅5 기업은 여전히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된다. 빅5의 1분기 매출 총합은 3590억달러, 순이익 총합은 690억달러다. 빅5의 핵심사업은 여전히 성장세를 구가한다. 특히 클라우드 컴퓨팅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3대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기업인 알파벳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1분기 430억달러 매출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33% 늘었다.

웨드부시의 아이브스는 "예상과 달리 전통의 테크기업과 하드웨어 기업 주식도 내상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전통의 반도체기업 인텔의 주가는 지난해 11월 이후 13% 하락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의 아이콘인 IBM은 오히려 12% 늘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어도비와 오라클, 세일즈포스 등 안정적인 매출과 높은 이익마진을 자랑하는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제조사들도 신속히 반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달 11일 코인베이스 주가가 폭락하긴 했지만 금융 주류로 진입한 지급결제, 암호화폐 플랫폼도 반등할 여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러시아나 중국의 사이버공격이 빈발해지면서 크라우드 스트라이크나 팰로 앨토 네트워크와 같은 사이버안보 기업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 미중 지정학적 갈등 역시 안보기관들과 협업하는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를 부양할 수 있다. 팔란티어 주가는 매출성장 둔화를 공개한 직후인 이달 9일 20% 급락한 바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는 긱경제(gig-economy) 기업들은 불안해 보인다는 분석이다. 승차공유기업 우버는 이달 4일 1분기 이용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1/5 늘었지만 여전히 60억달러 손실을 냈다고 공시했다. 콘텐츠 비용으로 수십억달러를 쓰면서도 구독자 늘리기에 고전하는 비디오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나 디즈니의 주가는 계속 하방압력을 받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기업 스냅이나 전자상거래기업 쇼피파이 등 2류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영역은 메타와 아마존이 굳건한 지배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기술기업 둔화세를 20여년 전 닷컴버블 붕괴와 비교하는 건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당시 기업들은 건전한 재무제표나 전도유망한 사업모델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많은 기술기업들은 두가지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코노미스트는 지속적인 주가 하락을 겪는 쿠팡의 미래를 밝게 내다봐 눈길을 끌었다. 쿠팡은 지난해 3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될 당시 800억달러의 시가총액을 자랑했다. 하지만 현재 정점 대비 약 3/4 하락했다. 지난해 15억달러 손실을 냈다. 지난 3월 쿠팡 최대 주주인 소프트뱅크는 주식 5000만주를 10억달러에 매각했다. 6개월 전만 해도 17억달러 가치를 지닌 주식이었다.

하지만 쿠팡은 여전히 자신감을 내비친다. 이달 11일 1분기 호실적을 보고했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2% 올라 51억달러를 기록했다.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핵심사업은 조정 기준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예상보다 더 빠른 흑자 전환이다. 쿠팡 주가는 이튿날 20% 상승하며 장을 시작했다.

지난해 순손실의 거의 절반은 재투자 때문이다. 특히 인프라에 대한 투자액이 많았다. 한국인의 약 70%가 쿠팡 물류창고 반경 10km 내에 거주한다. 네이버와 이베이코리아 등 경쟁기업들은 그같은 기반이 크게 부족하다. 탄탄한 물류네트워크를 보유한 전통의 소매기업들은 쿠팡보다 기술적으로 정교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쿠팡 직원들은 긱노동자가 아닌, 정직원 위주로 구성돼 있다.

쿠팡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식품 및 식료품 배달, 비디오스트리밍, 핀테크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쿠팡 제국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1분기 기준 쿠팡에서 한 번이라도 물건을 구매한 적이 있는 활성고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13% 늘어 1800만명이 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쿠팡은 지난해 일본과 대만에서 사업을 확장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두 나라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고 온라인 쇼핑 습관이 자연스러운 데다 도시인구 밀집도가 높다"며 "쿠팡의 또 다른 성공작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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