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석궁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Unbowed)'이 그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8일만이다.

전 캐스트, 전 스태프 무료 출연에 2억4000만원을 들인 초저예산 영화가 파죽지세로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형국이다. 100만 돌파의 추동력을 받은 영화가 앞으로 얼마나 약진할지 흥미롭다.

'비판적 리얼리스트 감독' 정지영(66)이 13년의 침묵을 깨고 만든 이 영화에 관객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지금까지 불가침의 성역(聖域)으로 군림해온 대한민국 사법부에 '강력한 똥침'을 날렸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실보다 더 리얼하게 사법부의 오만을 질타하고 있다.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묵살하는 재판장의 모습에선 공정한 법관이 아닌 권위주의 권력자의 행태가 묻어난다.

영화는 사법부의 허구성을 고발하고 있다. 법정은 김경호 전 교수(안성기 분 :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가, 김 교수의 재임용 탈락 항소심을 맡았던 박봉주 판사(김응수 분 : 박홍우 현 의정부지방법원장)에게 석궁을 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김 전 교수는 화살로 위협했을 뿐 박 판사를 향해 쏘지 않았다고 한다. 화살이 부러졌다는(구부러졌다는) 주장에 대한 소명이다. 그런데 검찰 측은 문제의 화살과 피묻은 와이셔츠를 제시하지 않는다.

거짓 일삼는 사법부 허구성 고발

여기서 관객은 두 가지 모순을 발견한다. 우선 러닝셔츠와 양복엔 피가 묻었는데, 피묻은 와이셔츠는 없다는 거다. 그건 일단 그렇다 치자. 문제는 박 판사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거다. 영화에서, 시위를 벗어난 석궁 화살은 생 돼지고기를 강력하게 관통한다.

만약 석궁이 박 판사를 향해 제대로 발사됐다면 박 판사는 이세상 사람일 수 없다. 따라서 화살은 휘어진(다른 곳을 향해 발사된) 게 확실하다.

증거 채택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해명 역시 군색하다. 피고인 측의 혈흔 감정 요청에 대해선, 1심에서 하지 않았기 때문에 2심에서 다시 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둘러댄다.

"유전자분석 결과 와이셔츠에서도 다른 옷에서 나온 것과 같은 유전자 혈흔이 발견됐다. 와이셔츠의 혈흔은 판사의 노모가 빨아서 없어졌다."

영화의 논리적 전개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여전히 자기방어에만 급급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일선 판사들은 "영화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잘못 전파하고 있다"며 분기탱천하고 있다.

당시 항소심의 주심을 맡았던 이정렬 판사(현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25일 법원 내부게시판 코트넷에 "(당시 변론 재개는) 학교 측이 아닌 김 교수를 위한 것이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는 '합의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법원조직법 제65조를 어긴 실정법 위반행위이다.

현직 판사가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과거 재판에 대해 해명하는 걸 보면 다급하긴 다급했던 모양이다. '석궁 사건' 발생 당시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전국 법관 회의를 열어 "사법부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고 사전 판결까지 냈던 사법부 모습을 연상시킨다.

국민참여재판 본격 도입 주장

정작 김명호 전 교수는 "영화보다 실제가 더했다"고 강변(强辯)한다. 재판 때마다 사사건건 '말썽을 피우는' 김 전 교수를 괴롭히기 위해 교도관과 감방 동료를 동원한 대목 역시 실제보다 약하다는 게 김 교수 가족의 일치된 증언이다.

그래서 감독은 진열장으로만 운용되는 국민참여재판의 본격 도입을 주장한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공정사회 정착을 위해 사법부 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우선 과제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사실보다 더 리얼한 영화 '부러진 화살'은 오늘, 우리의 희망이다.

윤재석 언론인, 프레시안 이사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