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크라이나전쟁이 벌써 100일이 훌쩍 지났다. 종전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가 한반도처럼 종전없는 장기대치상태나 장기전, 소모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향후 국제질서에 어떤 영향과 파급력을 미칠까. 21세기 신냉전 질서를 촉진시킬 계기가 될 것인가? 글로벌 다극질서를 형성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인가? 아니면 '우크라이나의 한반도화', 즉 동서분단체제의 형성으로 이어질 것인가?

3가지 시나리오는 각각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마치 한국전이 체제 간 '대리전'의 양상을 띠면서 한민족을 냉전 시대의 희생양으로 내몰았듯이, 어쩌면 우크라이나 인민들도 서구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 권위주의 진영 간 대리전의 희생양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역사적으로 약소국들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늘 희생양이 되곤 했다. 폴란드 우크라이나 핀란드 한민족 대만 등이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특히 동아시아의 화약고인 대만이나 한반도가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되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러시아 책임 분명, 미국도 자유롭지 못해

이번 전쟁이 주권국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침략전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분명 국제법 위반이다. 하지만 미국이 러시아의 전통적 영역권을 계속 침범해 들어온 나토 동진확장 정책이야말로 이 전쟁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동인이라는 측면에서 미국 역시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바이든정부는 이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동맹 세력을 재규합하면서 나토 군비증강,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재결집하고 공고화하는 계기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전방위적으로 추진해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예상 밖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에너지 식량 부국 러시아는 대러제재에 거뜬히 버티면서 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한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 제재에 반대하며 오히려 중러 간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중이다.

러시아는 대중국 천연가스 수출을 전년 대비 67%이상 늘리면서 유럽으로 수출 감소분을 능히 상쇄하고 있다. 바이든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에서 중요한 파트너인 인도 역시 대러제재에 불참하면서 오히려 러시아산 원유를 싼 값에 더욱 더 많이 사들이며 제재의 실효성을 낮추고 있다.

특히 쿼드(QUAD 4개국 협력체)의 핵심 참여국인 인도의 대러 제재 불참은 미국에게는 뼈아픈 외교적 손실일 것이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인도·중국(RIC)과 같은 전략적 신삼각관계가 강화되는 추세다. 나아가 브릭스(BRICS) 역시 미국 주도의 중러 견제에 반대하고 있다. 에너지 위기, 식량위기, 공급망 위기로 이어지는 전쟁의 연쇄 파급력이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다극시대 한국 외교 안보여

이에 따라 올 하반기 연쇄 위기가 심화되면 심지어 독일을 비롯한 EU 미국의 동맹국들조차 각자도생의 실리외교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세계는 자유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 대결로, 미·중·러·인·EU·일 6강 사이의 합종연횡의 다극체제로 급속히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다극 시대 한국 외교가 잘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