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국가들이 러시아 제재 차원에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줄이고 있다. 그러나 인도와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을 늘리면서 제재효과가 먹히지 않고 있다. 에너지 정보제공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인도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25배 이상 늘렸다. 지난 2월 하루 평균 3만배럴 수준이던 수입량은 6월 들어 76만배럴 이상으로 급증했다. 인도의 이런 결정은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최대 37달러나 싼 러시아 우랄산 원유 구입을 통해 자국경제를 지키겠다는 의도다.

중국 역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급격하게 늘리고 있다. 중국의 5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전월 대비 28%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중국의 최대 원유 공급국이 됐다. 러시아는 3~5월 유럽에 하루 평균 55만4000배럴을 덜 보냈지만 같은 기간 아시아에 50만3000배럴을 더 수출해 유럽 감소분을 대부분 상쇄시켰다.

글로벌 금융시스템 여러 개의 경쟁 블록으로 나눠질 수 있어

러시아를 탈퇴시킨 미국 주도 국제금융 인프라(SWIFT)에 중대한 변화가 예상된다. 전세계 200여개 국가 1만1000여개 금융기관이 SWIFT에 가입해 있다. 매일 4200만개의 금융정보와 수조달러의 자금을 처리한다. 2021년 말 기준 SWIFT에서 미국달러 유로 파운드 위안화 결제 점유율은 각각 40.5%, 36.7%, 5.9%, 2.7%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해 온 양축은 미국 군사력과 달러패권이다. 달러패권이 러시아 금융제재의 기반이다. 달러는 무역과 금융거래, 중앙은행 외환보유고 구성에서 가장 널리 쓰인다. 그런데 이번 대러 금융제재는 과거와 결이 다르다. 지금까지 미국의 제재는 주로 테러조직의 자금 봉쇄나 이란 핵 프로그램처럼 특정 사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러시아처럼 규모와 영향력이 큰 나라를 대상으로 한 제재 사례는 없다.

러시아중앙은행의 자산 동결은 국제금융시장에 큰 충격이다. 이는 전세계 국가들에게 미국 은행들에 대한 거부감을 자극할 것이다. SWIFT가 축소 변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여러 개의 경쟁 블록으로 나눠질 수도 있다. 역대 전쟁은 지배적 화폐의 패권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통화시스템을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한 바 있다.

달러패권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만만치 않다. 러시아는 SWIFT를 우회할 방법을 강력히 원한다. 독립적 외교정책을 유지하려는 인도는 루피-루블화 결제시스템을 검토하고 있다. 양국통화가 국제무역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루피-루블화 거래 평가 기준으로 중국 위안화가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국제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지난달 모스크바 현물 외환시장에서 루블화로 환전된 위안화 규모는 259억1000만위안(약 4조8100억원)으로 지난 2월보다 1067%나 급증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달러화 의존도를 줄이고 양국 통화를 대체제로 삼으려는 움직임이다. 반면 달러-루블화 거래는 제재의 영향으로 약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중국은 지난 수년 동안 '위안화 기반 은행간 통신협정'(CIPS)을 개발하는 데 전념했다. CIPS는 현재 100개국 1200여개 금융기관들이 이용한다. SWIFT에 비하면 여전히 미약하지만 러시아 주요 은행들이 SWIFT에서 퇴출되면서 중국 CIPS가 신속히 성장할 기회를 맞았다. CIPS는 SWIFT의 피난처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미래 어느 시점에 SWIFT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 안정성 아직 건재해

그럼에도 달러의 종말을 얘기하기는 너무 이르다.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의 영향력이 강력한 이유가 아직도 많다. 최근 루블화 가치가 회복됐지만 러시아가 미국 제재 영향력에서 도피할 손쉬운 방법은 없다. 게다가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의 금융봉쇄 회피를 돕는 기업들을 2차 제재를 무기로 또다시 위협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를 도우려는 국가들의 은행에게 매우 위험한 요인이다.

3조1300억달러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는 중국의 딜레마는 크다. 중국은 이를 어딘가에 투자해야 하는데 달러자산을 대량 보유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유동성과 시장접근성 측면에서 달러에 비견될 대상은 없기 때문이다. 달러패권의 종말이 자주 거론되지만 명확한 근거는 부족하다. 27일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3.67을 기록했다.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기축통화로서, 에너지시장 거래통화로서 달러의 안정성은 아직 건재하다는 시장의 평가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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