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드라마클럽 희말라야 "일상에 활력" … "사회 현안 다룬 희곡 통해 공동체성·시민의식 높이길"

"자, 동지들, 나를 봐, 나를 보란 말야. 보리야, 나는 비겁한 놈이 아냐. 무서워서 뒷걸음친 게 아냐. 어린애들이 타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야. 그 심각한 표정을 한 두개의 작은 얼굴이 거기 있는데 나는 그 무서운 폭탄을 손에 쥐고 있는 거야. 바로 그 얼굴에다가 폭탄을 던져야 하는 거였어. 거기다 대고 정통으로. 아, 못 해!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

"한계 따위는 없어. 사실상 너희는 혁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거야. 조금도 안 믿고 있어. 만약에 너희가 혁명을 전폭적으로, 에누리 없이 믿는다면, 우리의 희생과 승리에 의해서 폭정으로부터 해방된 러시아를, 마침내 이 세계 전체를 뒤덮고 말 자유의 천지를 건설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면, 그리고 그때 비로소 인간이 지배자와 편견들에서 해방되어 진정 신들과 같은 얼굴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수만 있다면, 그까짓 어린애 둘쯤 죽는 것이 뭐 그리 큰 문제가 된단 말인가."

28일 소셜드라마클럽 희말라야 참가자들이 희곡 '정의의 사람들'을 낭독하는 모습. 사진 이의종


28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낙원아파트. 소셜드라마클럽 '희말라야'(희곡으로 말해봐요 라이브로 야무지게) 참가자 10명은 '정의의 사람들'(알베르 카뮈)을 낭독하는 데 집중했다.

'정의의 사람들'은 20세기 초반 러시아를 배경으로 5명의 테러리스트가 세르게이 대공의 마차에 폭탄을 던져 그를 살해할 모의를 꾀하는 내용이다. 대공의 암살 계획을 세우고 결국 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인물 하나하나 살아있어" = 참가자들은 2시간 동안 나 자신과 일상에서 잠시 빠져 나와 희곡 속 배역에 몰입했다. 희곡을 소리를 내어 읽으며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 높이거나 낮추는 것은 물론, 감정이 격해질 땐 자리에서 일어서서 몸으로 표현했다.

참가자들은 배역에 몰입해 때론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고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 하며 메모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2시간 동안 몸으로 희곡을 읽었다. 동시에 이들은 배역에 몰입한 서로의 모습을 배려하며 상호작용했다.

28일 소셜드라마클럽 희말라야 참가자가 희곡 '정의의 사람들'에 집중한 모습. 사진 이의종


이후, 참가자들은 1시간여 동안 희곡에 대한 감상과 토론을 이어갔다. 희말라야의 기획을 맡아 참가자들과 함께 희곡을 낭독한 강윤주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이 작품은 연극영화과에서 항상 읽고 공연을 올리는 연극계의 고전"이라면서 "1950년대 카뮈가 작품을 썼을 때는 당시의 울림이 있었겠지만 삶이 훨씬 복잡화된 현대 사회에서 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고 말을 꺼냈다.

한 참가자는 "소설 '이방인'을 굉장히 힘들게 읽었는데 카뮈의 희곡은 보다 쉽게 읽었다"면서 "대사가 정확해서 전달하려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인물 하나하나가 현대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살아있어서 전달이 더욱 잘됐다"고 덧붙였다.

◆"일주일 중 하루 일탈하는 기분" = 소셜드라마클럽 희말라야는 드라마를 담은 희곡을 통해 사회적 현안을 함께 읽으며 공감하는 프로그램이다. 8주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총 8편의 희곡을 읽는다. 오프라인 모임이 일찍 마감돼 온라인 모임을 추가했으며 온라인 모임의 경우, 부산 대전 등 전국에서 참여하고 있다. 이후 희말라야는 원하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발성과 몸연기 특강, 낭독극 공연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강 교수는 "소셜드라마클럽은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현안을 다룬 희곡을 통해 내용 파악을 하는 것은 물론, 참가자들이 극 중 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감정이입해 개별 현안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한다"면서 "함께 희곡을 읽으며 공동체성과 시민의식이 제고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남녀노소 다양하다. 3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의 폭도 넓다. 성우 지망생, 공연예술기획자, 번역가, 문화예술기획사 대표, 현직 문화재단 대표 등 매우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김산하(32)씨는 "여러 사람이 자기만의 해석을 바탕으로 낭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 읽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어 좋다"면서 "일주일 중 하루 일탈하는 기분으로 좋은 분들 만나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어 일상에 큰 활력이 된다"고 말했다.

강천웅(50)씨는 "문화예술해설자원봉사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해설사들도 이런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관람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좋을 것"이라면서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늘 긴장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일상에서 떠나 2시간 동안 맡은 배역에 몰입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도지침에서 세월호까지 = 희말라야가 읽는 희곡들은 '정의의 사람들'을 포함해 △날 보러 와요(김광림) △보도지침(오세혁)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하타사와 세이고) △채플린, 지팡이를 잃어버리다(서현철) △노란봉투(이양구) △12인의 성난 사람들(레지날드 로즈) △집집: 하우스 소나타(한현주) 등이다. '날 보러 와요'는 영화 '살인의 추억' 원작이며 '보도지침'은 1986년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 '말'지에 보도지침을 폭로한 실제 사건의 판결 과정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연극판 '스카이캐슬'로 한국의 입시 문제를 다룬다. '노란봉투'는 세월호 침몰과 해고노동자들의 문제를 응시하는 작품이다. 희말라야는 이중 3편의 작가들을 초대해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한다.

희말라야는 문화공유 사회적협동조합이 예산을 지원하며 (사)시민자치문화센터와 희곡낭독모임 '희희낭락'이 실무를 담당한다. 강 교수는 "희말라야는 순수 민간 재원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 "희말라야가 1회성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해마다 지속될 수 있도록 모든 단체들이 꾸준히 협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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