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외무부장관 "2세기 동안 굴욕"

서방 향한 '뿌리 깊은 불신' 드러내

서방이 우크라이나전쟁에 중립적인 인도를 끌어들이려 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7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주요 7개국(G7)은 독일에서 6월 26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정상회의에 나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초청했다.

G7은 이 자리에서 투자확대를 약속하며 인도를 끌어들이려 했다. G7은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에 사회 인프라, 전력.통신망, 보건체계에 6천억달러(약 777조원) 투자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모디 총리는 우크라이나전쟁과 관련해, 대화를 통한 갈등해결이라는 원론적 견해를 고수했다고 인도 언론 타임스오브인디아가 보도했다.

비나이 콰트라 인도 외무부차관도 28일 기자회견에서 대화와 외교로 우크라이나사태를 해결한다는 모디 총리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침공 후에도 중립노선을 유지하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았다.

3월 2일 유엔총회에서 인도는 러시아의 침공규탄 및 철군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오히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효력을 희석하는 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에너지 정보제공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하루 80만배럴로, 전쟁전 하루 3만배럴 보다 25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대해 미국 국가안보회의 조정관인 존 커비는 25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도를 포함한 모든 국가가 '푸틴의 비용이 계속 상승하고 있어 전쟁을 하기 더 어려워지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영국 한 언론은 인도가 러시아 석유의 유럽진출을 위한 '백도어'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서방의 비판에 대해 인도 외무부장관은 "인도는 서방과 마찬가지로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며 비판을 무시했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은 6월 3일 인도가 러시아 석유를 구매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분쟁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유럽은 러시아 석유와 가스를 사고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유럽도 전쟁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 아닌가? 인도만 자금을 지원하고 유럽은 아니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중립 외교를 펼치는 인도는 쿼드(Quad,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안보 협의체)의 일원으로 지난 몇 년간 미국과 가까워졌지만, 러시아 중국과도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의 경제협의체)의 일원으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인도 지도층은 식민경험으로부터 서방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

현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은 2019년 10월 1일 미국을 방문해 "인도가 서방의 지배하에 2세기 동안 굴욕을 겪었다. 영국인이 인도에서 가져간 부를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45조달러(약 6경원)에 이른다(British took close to $45 trillion from India in today's value)"고 말했다고 인도 언론 '인디언 익스프레스'가 보도했다. 인도가 가난한 것 모두 영국 탓이라는 게 깊은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인도 전문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 강성용 교수는 6월 4일 한 유튜브방송에서 "인도는 양적 거시경제사란 분야를 개척해 영국에 수탈당한 액수를 계산해 냈다"며 "인도 우파는 인도가 17~18세기 서방보다 훨씬 부유한 나라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국 때문에 가난해 졌다. 인도가 가난한건 모두가 영국탓' 이란 게 인도 우파의 기본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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