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총회에서 발언 … 야당 출신 의장, 중립 확보 주목

민주당 경선땐 "민주당 피가 흐른다", 당선 이후엔 '협치'

'김형오 협치'땐 '여대야소'에 '소고기 파동'으로 개원 늦춰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출발부터 '반쪽 국회의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작할지 주목되는 가운데 '의장선출 연기'를 먼저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 출신의 국회의장으로서 입법부를 어떻게 운영할지 고민한 결과로 보인다.

1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전날 의원총회 전에 원내 지도부에서 후반기 국회 개원일을 뒤로 미루는 방안을 논의해 의견을 모았는데 김진표 의장 후보가 같은 취지로 발언했다"면서 "여당과의 합의와 협치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라고 했다.

대화하는 김진표 국회의장 후보자와 최영범 홍보수석 | 김진표 국회의장 내정자가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2 경향포럼'에서 최영범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의원총회에 참석한 모 의원은 "국민들 보기에도 국회의원 전체의 동의를 얻어 의장이 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김진표 의원의) 발언이 있었다"며 "민주당이 한 번 더 시간을 두고 합의를 추진해서 국회를 열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했고 이를 전체적으로 동의했다"고 했다.

김 의원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 쪽에서 나온 국회의장으로 입법부 전체를 대표하는 데 '반쪽 국회의장'의 꼬리표가 부담됐을 것으로 보인다.

전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교섭단체 합의 없는 상황에서 본회의 소집해 안건을 상정하는) 불법 본회의에서 선출된 국회의장은 당연히 원천무효일 뿐만 아니라 의장으로서의 정통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자명하다"며 "김진표 (의장) 후보께서는 다수당만 참여하는 불법 본회의를 인정하는 것이냐"고 따지기도 했다.

◆김 의원의 '고난의 행군'은 이미 시작 = 김 의원은 2020년 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도전했으나 당시 우상호 원내대표의 조율에 따라 '전반기 박병석, 후반기 김진표'로 구두 약속하고 한 발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년이 지나 후반기 국회의장을 뽑을 때가 되자 '김진표 대세론'이 옅어지고 경선 분위기가 거세졌다. 심지어 우상호 의원도 도전장을 냈다. 이상민, 조정식 의원이 가세했다. 국회의원 선거로 뽑는 국회의장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김 의원은 출사표를 통해 "윤석열정부를 강하게 견제하는 일이 국회 다수당인 우리 민주당의 사명"이라며 "불통과 독선의 검찰공화국으로 폭주하는 윤석열정부의 불도저식 국정운영을 막아내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합리적 조율자'라는 기존의 이미지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지지층들의 요구를 수용한 '선택'이었다. "기회를 주신다면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그 중심이 민주당이 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며 "제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고도 했다.

또 김 의원은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과정에서 법사위 안건조정위원장을 맡아 일방통행의 선두에 서는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당적을 내놓고 중립적으로 국회를 운영해야 하는 국회의장 후보가 사실상 편들기를 하겠다는 공공연한 선언이어서 당시에도 논란이 됐던 대목이다. 그만큼 절실했다고 할 수 있다. 김 의원은 166표 중 89표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됐다.

그는 김대중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국무조정실장을 거쳐 노무현정부에서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를 맡았으며 18대 국회에 수원 영통으로 출마해 내리 5선에 성공했다. 문재인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아 국정운영의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전해철 의원을 지원, 당대표에 나서는 이재명 상임고문과 아직 거리를 두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법대 후배다. 이러한 사적 인연이 입법부와 행정부 관계를 푸는 데 어떻게 작용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여소야대' 중재 해법 찾아라 = 기획재정부(재정경제부) 출신의 경제통인 김진표 의원의 입법부 실험이 이제 출발점 앞에 놓였다. 민주당과 지지층들의 강력한 압박과 여당이 지원하는 윤석열정부에 대한 견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민주당은 170석을 갖고 있어 정부와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법안을 막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국회 임명동의가 필요한 인사, 정해진 날짜에 통과시켜야 하는 예산과 함께 민주당이 추진하는 입법 과제 등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국회의장이 지원하는 방식은 여론에 뭇매를 맞을 수 있다.

국회 핵심관계자는 "국회의장은 당적을 떠나 중립적 입장에 있어야 하고 처음부터 한쪽의 동의없이 반쪽 국회의장으로 시작하면 2년간 매우 어려운 곤경에 처할 수 있다"면서 "국회의장이 될 때는 민주당 지지층을 살폈지만 의장이 된 이후엔 시간과 여유를 갖고 여야를 두루 살펴야 한다"고 했다.

◆김형오 의장때와는 다르다 =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김형오 국회의장이 '신뢰받는 국회를 못 만들면 정치가 영영 실종된다'며 협치를 강조하고 일방적인 의장선출을 거부했다"고 했다.

2008년 5월말부터 시작한 18대 전반기의 김형오 전 의장은 과반의석을 가진 여당 출신이었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153석의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자유한국당, 친박연대와 합하면 185석이었고 보수성향의 무소속 의원들까지 더하면 202석으로 개헌선을 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엔 이명박정부 초반으로 소고기 파동이 전국을 휩쓸고 있었다. 김 전 의장은 구술인터뷰를 통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했는데 (내가) 국회의장 되는 것을 반대하더라"며 "소고기 파동 정국 등을 고려해 정책국회, 상생국회, 소통국회를 내세웠다"고 했다. 소고기 파동 여론이 절대과반의 보수진영 출신인 김 의장 선출을 40여일 늦춘 이유였다는 설명이다. 당시 수적 우세를 믿고 밀어붙였을 경우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21대 후반기 국회와는 다소 다른 상황이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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