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피해 50% 배상해야"

2020년 7월 경기도 부천의 한 자동차부품 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전기용해로 안에 있는 도가니에 구멍이 나면서 660℃의 알루미늄이 바깥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가 설비를 납품한 업체들을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한 결과 일부 피해를 보전할 수 있게 됐다. 부품업체에 공급된 설비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5단독 조규설 부장판사는 흥국화재해상보험이 A씨와 B사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A씨는 흥국화재에 3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B사는 부품업체에 전기용해로를 제작해 판매한 업체였고, 용해로 안에 있는 도가니는 A씨가 수입·판매한 것이었다.

당시 부품업체 직원들은 용해로를 보온(620℃) 상태로 설정한 뒤 퇴근했다. 그러나 도가니에 구멍이 났고, 흘러나온 알루미늄은 용해로 주변에 있던 작업복 등 가연성 물질 등에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흥국화재는 화재로 인해 부품업체에 7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했고, 화재 발생은 A씨와 B사의 때문이라며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과정에서 흥국화재는 다른 보험가입자가 유사한 사건을 겪은데 주목했다. 문제가 된 업체도 A씨가 판매한 같은 도가니를 사용하다가 화재가 발생했다.

흥국화재는 다른 업체의 화재사고에 대해 A씨와 소송전을 벌인 터라 이전 사건 경험을 가지고 공방을 벌였다.

흥국화재는 "문제가 된 도가니는 인장강도가 너무 낮은 결함이 있고, 구멍이 생기면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부품업체에 공급한 도가니 인장강도는 20N/㎣로 조사됐다. 주물에 쓰이는 도가니는 100~400N/㎣인데 반해 너무나 낮은 성능이다. 하지만 A씨는 인장강도 229N/㎣의 제품을 공급했다고 맞섰다.

조 부장판사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변론기일에 계속 출석하지 않았고, 변론 종결에야 도가니 시험성적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A씨가 제출한 자료의 신뢰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229N/㎣의 도가니가 공급됐더라면 파손되지 않았어야 한다.

조 부장판사는 "도가니의 지나치게 낮은 인장강도로 인한 파손이 화재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도가니에 존재하는 결함이 화재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어 "용해로의 기계적 결함 역시 화재 발생에 영향을 미쳤고, 부품업체가 용해로 상태를 확인·점검·교체 등 조치를 취하지 않고 용해로 주변에 가연성 물질을 두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며 "A씨의 책임은 5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한편 흥국화재는 전기용해로 제조사인 B사에도 제조물책임(PL)법이 적용돼 화재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 부장판사는 제품이 판매·사용된 지 18년이나 된 점, 제품 보증기간 10년을 넘어선 점 등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측은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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