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4차산업혁명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된 의견은 없다. 사물인터넷(IoT)을 강조하는 쪽은 반도체 하드웨어(HW)를, 빅데이터를 강조하는 쪽은 소프트웨어(SW)를 핵심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정을 주관적으로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세계 IT 실적 기반의 실물경제 지표를 토대로 할 때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공개된 세계 100대 IT기업 실적이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SW 대 HW 비중을 가늠해 볼 근거 자료가 나온 것이다. S&P 보고서를 기초로 전경련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국 대만 일본의 경우 HW에 편중된 구조를 가진 반면 인도 폴란드는 SW에 편향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진 국가를 기준으로 해서는 비중 수치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비중 논의가 의미 있으려면 SW 마인드와 HW 마인드가 동시에 잘 형성된 나라를 대상으로 분석하는 게 맞다.

SW와 HW가 골고루 발달한 나라는 미국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의 SW 대 HW 비중은 60 대 40으로 나타났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미국의 경우 SW 대 HW가 3197조원 대 2022조원이다. 비율로 환산하면 61.2 대 38.7. 즉 60 대 40으로 볼 수 있다. IT 전반에서 SW 몫이 HW에 비해 1.5 배 정도 크다.

한국의 경우는 SW가 너무 미약하고 HW는 매우 강해 0.0001 대 100으로 나온다. SW에서 우리는 미국과 38만7000배 차이다. SW 비중이 이미 43 정도인 일본과의 격차도 크다. 일본은 HW에서는 우리보다 뒤쳐졌지만 SW에서는 우리를 훨씬 앞질러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SW 경시 풍조는 고질병처럼 돼버렸다. 우리도 최소한 10으로 가지 않는다면 HW 일변도의 거대한 하청국가로 곧 전락할 처지다.

디지털전환도 SW 없으면 불가능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SW에서 응용SW는 배제하고 기초SW(시스템SW로 지칭) 만을 대상으로 한 점이 발견된다. 한국의 안랩과 더존을 기초SW 업체 범주에 포함시킨 걸 보면 분류체계에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들은 원래 응용SW로 분류해야 맞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정작 시스템SW를 만드는 기업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아이비엠 오라클 HP에 국한된다. 그러나 이런 엄격한 기준으로 분류하면 기초SW에는 미국 기업만 있게 되므로 광의로 해석해 보안이나 회계 기능을 갖는 응용SW 범주까지 확대시킨 것이다.

SW 알맹이가 없는 한국의 현주소가 극명하게 드러난 데 덧붙여 우리가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반도체마저도 미국 대만 중국에 이어 4위 국가라는 점이 이번에 드러나 충격을 더한다. 우리가 반도체에서는 세계 1등이라고 했던 말이 완전히 무색해진 것이다. 한국 반도체 위기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코로나에 신경 쓰는 동안 세상이 SW 중심으로 바뀐 것을 모르고 지나갔다는 것이 전경련의 분석이다. 코로나 발생 이전과 비교하면 IT전반에서 '기술HW 및 스토리지' 부문은 4위에서 9위로 밀려나고 대신 그 자리를 시스템SW가 차지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삼성전자가 하도 여러 사업을 하는 관계로 S&P는 삼성전자를 반도체 전문기업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기술HW 전문기업 범주로 분류해 놓았다는 사실을 참고해야 한다. 한국이 9위로 밀려났다는 말은 삼성전자의 입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전경련 해석과는 무관하게 IT가 향후 SW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디지털전환이다. 디지털전환이란 기술이라기보다는 한마디로 HW가 아닌 SW를 기반으로 기업의 외연 확대를 도모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신경영전략이다.

인수합병을 통하지 않고도 기업 간 합종연횡 효과를 실질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신경영기법이다. 기업 네트워크 확장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업 간 플랫폼이 필요하고 그 틀 안에서 연동용 SW가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SW역량이 부족해서는 디지털전환도 할 수 없다. 이 물결이 점차 거세질 것이 유력시되기 때문에 이제는 업종을 막론하고 사업구조를 SW 중심으로 재편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으로 가고 있다.

디지털 국가전략 방향 수정할 때

우리가 이런 경영 패러다임으로 탈바꿈하는 데 느린 이유는 국내 기업이 SW 역량 자체 확보나 외부 인력 활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세계적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국가 발전 전략을 짜야지 스스로 잘 해왔던 것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 SW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 종전보다 오히려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기이한 현상이면서도 심각한 문제다.

SW는 국경이 없다. 윈도우나 크롬처럼 글로벌 경쟁력이 있어야만 살아남는다. 이 땅에도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SW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디지털 국가전략 방향을 수정할 때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