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필수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

8월 24일은 한중수교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에게 30년은 UN에 가입하고, 과거 적대진영과 수교하고,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어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기간이었다. 최근 30년 "세계화의 기적"은 탈냉전 구도 속에서 우리의 주체적 역량을 발휘한 바가 크다. 한중수교는 이러한 세계화의 기적을 향한 우리의 노력 중 가장 중요한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기회 포착한 기업과 실용 정부의 성과

기업들은 진작부터 중국에서 불어오는 기회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삼성그룹은 1985년부터 홍콩을 통한 간접투자를, 다른 기업들도 1988년 직접투자를 시작했고 공식 수교가 이뤄지기 전에도 베이징 등지에 사무소를 설립했다. 결과는 대중 무역흑자가 전체 무역수지의 87%를 넘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기업들의 이러한 노력을 이끌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안정적이고 실용적인 대외전략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동안 소련(90년) 및 동구권과 수교를 맺고 남북한 UN 동시가입(91년)을 이뤄냈으며 마침내 중국(92년)과도 수교를 맺었다. 김영삼정부는 세계화를 추진하며 우리나라를 OECD에 가입시켰다. 단, 환율제도를 충분히 정비하지 않은 탓에 외환위기라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김대중정부는 대외개방의 고통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적극적인 대외개방 기조를 이어나갔다.

노무현정부도 미국으로부터의 자주를 표방하면서도 한미 FTA를 체결했다. 이명박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고 박근혜정부는 한중 FTA를 체결하고 한중통화스왑협정을 맺었다. 문재인정부는 한중FTA를 비준하고, RCEP를 체결했고 CPTPP에 가입 신청을 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아무 갈등 없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고 FTA들을 체결하고 비준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있었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동맹을 규합하여 중국에게 맞서겠다는 바이든의 등장은 우리에게 더 촘촘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수교 당시 기꺼이 우리의 자본에 고용되던 중국은 어느새 우리와 경쟁적 구도를 갖추게 됐다. 어려운 선택의 순간에 다시 한 번 기업에게 길을 묻는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의 중국 활동은 구조조정 중이다. 투자총액은 증가하고 있지만 투자회수액도 증가하고 있다. 휴대폰은 철수했지만 반도체 설비는 확대하고 가전 설비는 축소하지만 자동차용 전자부품 설비는 확장한다.

이념적 유연성과 실용성 더 필요한 시기

안정적인 배터리 원료 조달을 위해서 중국 기업에 지분투자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중국 대륙에 대한 투자는 홍콩·싱가포르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 순위를 지키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경유지 역할을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한국이 최대 대중국 투자국이라고 지칭해도 된다. 과거와 같은 세계화의 시대는 분명히 끝났다. 탈중국을 도모해야 할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다. 미국의 공급망에 참여하는 것이 좋은 기업도 있고 중국의 공급망을 버릴 수 없는 기업이 있다. 과거에는 2차 방정식을 풀었다면 이제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행위의 주체가 국가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양한 기업들의 활동을 용인해야 한다. 노태우정부 이래 우리의 선배들이 견지했던 이념적 유연성과 실용성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