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일 대도시방재안전연구소장

이번 서울 강남역 침수를 놓고 책임 공방이 무성하다. 2011년에 발표한 7개의 빗물배수터널 계획이 시행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한다. 그런데 신월터널 공사 착수 후 2014년도에 뒤늦게 실시한 '수리모형실험'에서 빗물이 유입구로 거꾸로 솟구쳐 역류했던 사실에는 말이 없다. 안타깝게도 당시 이 현상의 발생 원인을 제대로 설명한 이가 없었다. 나머지 6개 터널이 유보된 이유로도 볼 수 있고 7개 터널을 계획할 때 조사가 불충분했음을 뜻한다.

다음 시장은 1년 넘게 전문가 숙의를 거쳐 하수관 정비를 위주로 34개 침수지역의 방재성능을 시간당 95mm까지 높이는 계획을 마련했다. 전임 시장이 선언한 시간당 100mm는 2012년 정부(소방방재청)가 정한 '지역별 방재성능목표'에 따라 수정됐다.

이에 반해 도심의 대응 목표를 시간당 75mm로 높인 도쿄는 기존의 하수관 정비는 예전 그대로 50mm로 유지하고, 추가분은 터널형 하수도 신설로 달성하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기존 하수관은 관경을 늘리거나 새로 부설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강남역 주변 하수관 정비가 각종 지장물로 늦어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강남역 침수 놓고 무성한 책임 공방

복귀한 시장이 6개의 빗물배수터널을 재추진하겠다고 하고, 강남은 목표를 110mm로 높이겠다고 한다. 도쿄는 75mm(20년 빈도)의 목표를 정할 때, 과거의 강우와 피해 현황이 담긴 기록을 공개하고 대부분의 수해에 대응 가능하다고 그 결정 이유를 밝혔다. 약 1만개 동의 침수가 발생했던 이상 강우는 대응 범위에서 제외했다.

강남역 일대는 하루아침에 100년 빈도의 110mm로 바뀌었다. 이번에 내린 비가 시간당 110mm라는 것 외에는 이유를 알 길이 없다. 목표 달성을 위해 빗물배수터널을 만들겠다고 한다. 계획이 95mm까지 대응하게 되어 있어서 터널을 만들려면 목표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100년 빈도의 강우가 10년 만에 다시 내릴 확률은 10%, 50년 만에는 40%다. 안 내릴 확률은 각각 90%, 60%나 된다. 이상기후로 인해 목표를 올려야 한다지만, 옆 동네에서 내린 시간당 140mm의 강우에는 어차피 못 견딘다.

엄청난 재정을 들여 인프라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기왕의 목표를 달성해 나가면서 집중호우에는 '시민생명 보호'를 목표로 경보 체제와 피난 대책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시민 협조를 구해야 한다.

지금 진행 중인 하수관 정비도 예산 부족과 지장물 때문에 지연되고 있는 마당에 새로 터널을 설치하면서 그마저 흔들려 기왕의 목표 달성도 더 늦어질까 우려된다. 그럼에도 부득이 터널을 만들겠다면 복합용도로 검토했으면 한다. 말레이시아처럼 도로로 쓰거나 다른 계절에는 공공자전거를 비치해서 지하 자전거길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뉴욕의 로라인처럼 태양광을 넣어 지하공원이나 문화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 '창의 행정'이 현 시장의 강점이므로 좋은 방안이 나오리라 믿는다.

세심한 현장조사로 오류 방지

그리고 이번에는 충실한 국내외 문헌조사와 함께 일본이 터널 유입구로 거꾸로 물이 솟구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설치한 오리피스 커튼월 공기배출구 등의 시설에 대한 현장조사도 세심하게 해서 정책적 기술적 오류를 방지했으면 한다. 정치권이 진보·보수로 나뉘어 서로 탓할 때가 아니다. 이상기후 앞에서 힘을 합쳐도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