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세 건국대 의대 교수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로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힌 코로나19가 어느덧 익숙해진 사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불청객이 찾아왔다. 우크라이나전쟁이 촉발한 원자재가격 상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켰다. 이를 해결하고자 미 연준은 큰 폭의 금리인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수입물가 급등과 이자부담 가중으로 가계와 기업의 경제 상황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국민건강을 책임져야 할 건강보험이 도리어 국민에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줄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쳤다. 2007년 건강보험법에 규정된 이후, 세차례 연장되어 온 건강보험 '정부지원'이 올해 말로 종료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와 국민건강증진법 부칙 제2항에 따라 당해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원하고 있다. 20% 중 14%는 국고에서, 6%는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해야 한다.

건강보험 수입의 한축을 구성하는 정부지원이 갑자기 중단되면, 이로 인한 약 18% 급격한 건강보험료율 인상이라는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이는 향후 건강보험 제도 운영 자체를 크게 흔들 것이다.

건강보험 정부지원법은 과거 세차례 유효기간 연장을 거쳤다. 2007년 5년 한시지원으로 규정 제정 후, 2011년에 5년, 2016년에 1년, 2017년에 5년 연장 개정이 이뤄졌다. 개정 논의가 있을 때마다, 안정적 재정지원을 위해 한시지원 규정 '삭제', 지원방식 및 비율 조정 등 요구 목소리가 높았으나 번번이 재정당국의 반대에 막혀 유효기간 연장만 이어왔다.

건강보험 재정 책임, 국민에 전가

올해는 상반기가 다 지나도록 21대 국회에 발의된 4건의 개정법률안에 대한 국회 논의조차 없어 혹여나 정부지원이 정말 종료될까 하는 국민의 걱정만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국민 부담을 고려해 2023년 건강보험료율이 정부지원 확대 요구를 부대의견으로 1.49% 인상된 7.09%로 결정되었다. 부과체계와 소득세제 개편으로 인한 수입 감소와 의료이용 회복으로 인한 재정 지출을 감당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상 결정이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안정적 보험제도 운영을 위해 가입자와 공급자 모두 한 발씩 양보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

반면 정부는 국가 책임 영역인 감염병 사태에 검사·치료비, 예방접종비 등을 건보 재정에서 우선 지출해 긴급 대응했으나, 이에 대한 비용 보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은 지난 45년간 국민 곁에서 든든한 사회보장 제도로 저변을 넓혀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과 비교해 기대수명, 암 사망률 등 대표 지표에서 높은 수준의 건강성과를 달성했고, 갑작스런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도 훌륭히 대처할 수 있었다. 인구고령화와 신약·신기술 개발, 사전예방적 건강관리 등으로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적 욕구는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시대 변화 걸맞은 재정분담 필요

정부는 120대 국정과제 중 66번으로 필수의료 기반 강화 및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해 '정부지원 확대'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런 만큼 한시규정 삭제 및 불명확한 규정 명확화 등 법 개정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국가 차원의 책임 있는 재정 분담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