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윤 화천현장귀농학교장

얼마 전 농민회를 중심으로 쌀값 하락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반 시민들은 물론 농사짓는 농민들조차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한물간 특정 작물 생산자들의 이익문제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

우리는 2020년 기준으로 곡물자급률이 19.3%밖에 안되는 절대적 식량 수입국임에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매년 남아도는 쌀과 식량자급률 45.8%라는 수치가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80kg 1가마는커녕 60kg조차 되지 않는다.

그동안 1인당 고기 소비량은 54kg으로 늘었다. 밥상에 고깃국이라도 나오면 대단한 날이던 때가 얼마 전이었는데 이제는 한 끼라도 고기가 없는 식단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소 돼지 닭 오리 등 다양한 고기들은 알다시피 수입산 곡물사료로 키운다. 쌀 소비가 줄어 쌀이 남아도니 곡물자급률은 높아져야 한다. 그런데 쌀 대신 고기 소비가 늘고, 그 고기는 수입 사료를 먹여 생산한 것이니 갈수록 수입의존도가 높아진다.

식량자급률 45.8% 수치가 눈가려

농가는 쌀농사가 돈이 안되니 논을 밭으로 바꾸고 있다. 수로관리를 하지 않아 물관리가 안되니 논농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이렇게 이탈한 농가들이 채소를 재배하니 채소공급이 과잉되고 채솟값이 떨어진다. 채소가 힘들어지니 과수로 전환을 한다. 전국에서 사과를 재배하고 배를 재배하니 과일값이 떨어진다.

남은 것은 축산뿐이다. 최근 귀농하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축산을 희망한다. 그런데 코로나와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국제교역의 불안정성과 곡물생산의 차질로 국제 곡물가가 계속 상승 중이다. 수입 곡물사료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축산농가들 경영을 타격한다. 학생들에게 추천할 농사가 없다.

더 큰 변화는 쌀 대신 밀을 먹는 식문화다. 바야흐로 빵의 시대다. 시골 구석에도 빵카페가 없는 곳이 없다. 은퇴를 한 남성들이 집에서 밥을 먹으면 삼식이라 욕하지만, 빵을 달라면 문화인 취급받는다.

남아도는 쌀 타령을 하지 말고 대신 밀을 심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인당 밀 소비량이 33kg이나 되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 밀 자급률 목표는 0.8%였다. 8%가 아니다. 변화한 입맛에 맞춰 쌀 대신 밀을 생산하는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TV나 유튜브를 틀어도 먹방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 이렇게 풍요로운 식단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식량위기니 안보니 하는 말이 가슴에 와닿을 리 없다.

북한의 경지면적이나 곡물생산량이 남한과 비슷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 북한 식량자급률은 80% 전후다. 국제적 유통체계에 편입하지 못한 걸로 고통받고 있다. 남한 자급률은 북한에 한참 못미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수준이다. 지금까지는 국제적 분업체계에서 농민들의 고통을 밟고 잘 먹고 잘 살아왔다.

국제정세 변화로 전 국민 고통받을 수도

그런데 한해 한해 실감하는 기후위기와 유행성 질환, 국제정세의 변화속에 그 고통이 국민 전체의 고통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농사짓는 농민을 귀하게 여기고 귀농하는 젊은이들을 고마워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