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 "중국 대체할 '세계의 공장' 위상 얻고 있지만 단순 조립국에 그칠까 우려"

앞으로 애플워치나 맥북 뒷면엔 '베트남서 조립'(Assembled in Vietnam)이라는 문구가 쓰인다. 애플은 에어팟 제조를 이미 베트남에 위탁했고 애플워치와 노트북도 베트남에서 시험생산중이다. 베트남은 2020년 기준 애플의 6대 공급국가다. 애플은 2020년 베트남 21개 공급업체에 하청을 줬다. 2018년 14개에서 대폭 늘었다.

닛케이아시아는 22일 "애플의 낙점을 받은 건 베트남이 쏟은 노력의 보상"이라며 "베트남은 지난 10여년 동안 글로벌 전자산업 생태계에 합류하기 위해 인텔과 삼성 샤오미 등 기술대기업의 공급망을 유치하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고 전했다. 베트남의 기술수출 성장세는 독보적이다. 2020년 베트남 총 수출품 중 하이테크 상품 비중은 42%다. 2010년 13%에서 크게 늘었다.

글로벌 공급망을 끌이들이는 데엔 성공했지만 하이테크 산업을 키우는 데까지 이르진 못하고 있다. 베트남정부의 딜레마다. 애플 공급사 21개 중 베트남 국적기업은 없다. 삼성전자 사례도 비슷하다. 삼성은 베트남에 진출한 지 14년 됐다. 현재 삼성 스마트폰 절반은 베트남에서 생산된다. 삼성이 2020년 뽑은 최고의 공급업체 리스트 25개사 중 베트남 기업은 없다. 닛케이는 "베트남이 기술기업을 키우지 못했다는 의미이자 하이테크 수출에 자체적인 가치를 보태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2019년 베트남 산업통상부 백서는 '아시아 이웃국가들과 비교해 무역과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능력이 뒤떨어진다'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베트남 산업통상부 다자무역국장 루옹 호앙 타이는 닛케이에 "글로벌 가치사슬에 오르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유리천장이란 말을 실감한다. 그 천장을 깨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아시아 4마리 용이었던 한국과 대만은 베트남 입장에선 선생 격이다. 두 나라 모두 낮은 단계 기술 제조업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자동차 반도체 로봇으로 가치사슬 계단을 올랐다. 베트남은 두 나라가 누렸던 많은 이점을 갖고 있다. 규율에 순응하는 노동자, 저임금, 국가산업정책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기술과 인프라 등 일부 요소가 부족하다. 타이 국장은 "동남아시아 많은 나라들이 두 나라를 모델 삼아 따르려고 노력하지만, 혁신의 단계까지 나아가 성공한 국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베트남 메콩개발연구소 국장이자 경제학자인 풍 퉁은 "베트남 기업들이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사 '오포'나 말레이시아 반도체기업 '실테라'처럼 경쟁력을 갖춘 제조사들이 된다면 성공한 것이다. 현재의 무역이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혜택을 줄 수 있게 된다"며 "그렇지 못하다면 베트남은 영원히 단순 조립국가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정체와 부진, 불평등이 만연할 것이고 아르헨티나식의 부채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중진국 함정을 피하기 위해 베트남은 새로운 전략을 세워 무역을 둘러싼 글로벌 게임에서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이테크 산업 육성에 실패

한때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고향, 6세기 민속무용으로 유명했던 베트남 하남성은 이제 각국의 기업이 진출한 산업단지가 됐다. 애플 공급사인 중국의 위스트론과 한국의 서울반도체, 아남전자 등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베트남 북쪽에 위치한 하남성에서 차로 3시간이면 중국에 다다를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 남부해안 산업중심지의 임금이 크게 상승했다. 이곳에 있던 많은 기업들이 중국 밖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근거리에다 저임금인 베트남이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최근엔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지정학적 이유도 보태졌다. 미국기업들, 그리고 제재를 피하려는 중국기업들도 베트남으로 속속 생산시설을 옮겼다. 중국정부의 엄격한 코로나19 봉쇄정책도 한몫했다. 애플을 포함한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생산시설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겼다.

아남전자 베트남법인 박현수 국장은 닛케이에 "베트남은 현재까지 투자를 적극 끌어들이며 잘 대처하고 있다"며 "하지만 복잡하고 정교한 상품생산으로 업그레이드하지 못하면 기술부족, 환경오염, 낮은 노동생산성, 높은 에너지 소비, 낮은 효율성 등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에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베트남 경제규모는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두배 넘게 커졌다. 하지만 폭발적인 성장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식스의 이코노미스트 트린 응우엔은 "산업화로 인한 가장 손쉬운 과실은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베트남은 곧 이런 과실을 맛보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베트남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면 기업들이 더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이웃 캄보디아 등으로 떠날 것이라는 의미다.

베트남은 해외투자자들에게 단일정당 시스템에 따른 정치적 안정성을 강점으로 제시한다. 여기에다 99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시장으로, 각종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대양항로에 접해 있으며 저럼한 노동자를 갖춘 국가로 홍보한다. 하지만 가치사슬의 계단을 오르려면 고숙련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노동자를 훈련시키면 임금코스트가 높아진다는 점이 딜레마다.

다국적 기업 대표들은 이런저런 불만을 호소한다. 먼저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직원을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관리자나 전문가, 기술자는 베트남 전체 노동력에서 10.7%를 차지한다. 동남아 6대 경제국들 중 최하위다. 공정노동 컨설팅기업 '리스펙트 베트남'의 창업자 하 당은 "일당독재의 특성상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막는 분위기가 있다"며 "시키는 대로 일하는 노동자를 좋아한다. 규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또 다른 불만은 마진을 잡아먹는 물류코스트다. 2021년 '베트남산업연구컨설팅'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내 총 물류비용은 GDP의 20%에 달한다. 아시아 평균 12.9%, 글로벌 평균 10.8%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고속도로는 전체 도로의 5% 미만이다. 육로운송 정체와 부실한 도로상황 때문에 남북종단 도시고속화도로, 호치민시 제2공항, 그리고 호치민시에 계획된 베트남 최대항구 등 주요 건설 프로젝트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게다가 세계은행 '2020 사업환경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사업 인허가엔 평균 166일이 걸린다. 아시아 국가 평균은 132.3일이다.

관건은 과거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 보여준 발전도식이 오늘날에도 가능한지 여부다. 한국과 대만은 1960년대부터 전략적으로 세계경제에 접근했다. 두 나라는 단호한 산업정책을 설계했다. 무역장벽을 세우고 노동자를 교육시키는 한편 거대 수출기업으로 성장할 기업들을 선별했다.

세계화 쇠퇴, 차기 아시아의 용 불확실

하지만 현재와는 다른 시기에 그같은 성과를 이뤘다. 지난 수십년 국가간 관세가 점차 낮아지고, 중국이라는 거인이 나타나 글로벌 제조력을 몽땅 흡수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크게 변했다. 게다가 세계화가 근본적으로 예측불가능한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공급망 불안정과 세계화에 대한 회의감, 지정학적 갈등으로 선진국을 포함한 각국이 산업정책을 재소환하고 무역블럭의 선을 다시 그리고 있다.

메콩개발연구소 풍 퉁 국장은 "현재의 글로벌 운동장에선 수출 거대기업을 키우기 위한 보호주의 정책을 쓰기 어렵다"며 "과거 각국은 정책적으로 관세나 비관세장벽을 내세워 자국기업을 보호했다. 하지만 현재는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호주 디킨대 경제학 교수 쑤언 응우엔은 "1980년대 수입관세는 평균 20%대였는데, 최근엔 5%까지 줄었다"며 "세계화의 풍경은 1980년대와 극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현재 15개의 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경영학 교수인 스자오웨이는 닛케이에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 국면에 진입했을 때 교역가능한 부문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게다가 저비용 컨테이너 운송으로 무역이 매우 수월했다"며 "하지만 이제 가치사슬을 오르려 노력하는 국가들은 더욱 힘들어졌다. 값싼 중국 상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풍 퉁 국장은 "하지만 베트남은 진보하고 있다"며 "삼성은 연구개발센터를 계획중이다. 일부 반도체 부품을 베트남에서 생산할 것이다. 애플도 베트남에서 스마트워치를 만들기로 했다. 베트남에 정교한 제조업이 부흥할 수 있다는 전조"라고 기대했다.

나티식스의 응우엔은 "말레이시아는 전자제품에 강한 공급망을, 태국은 자동차에 강한 공급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정치적 변동성이 크다. 베트남이 전략을 잘 짜면 이웃국가들의 공급망을 능가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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