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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지구촌]

소련 붕괴 후 분할국 성적표

등록 : 2022-09-23 11:55:42

정태인 전 투르크메니스탄 대사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는 근대화를 위한 시도가 있었다. 경쟁적이고 대립적인 구상으로 중체서용(中體西用)과 탈아입구(脫亞入歐) 등이다. 중체서용의 실패로 청나라는 망했고 탈아입구의 성공으로 일본은 세계열강의 반열에 올랐다. 이로 인해 한민족을 비롯해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경제발전과 부국강병은 이에 부합하는 정치사회 체제가 뒤따라야만 가능하다. 두개의 바퀴는 함께 굴러가야 한다.

소련의 몰락은 이러한 교훈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구성원의 창의성과 역동성의 구현을 어렵게 하는 권위주의적 계획경제 때문이었다.

1991년 말 소련이 붕괴해 15개국으로 분할됐다. 서편의 발트 3국, 우크라이나 포함 슬라브 3개국, 기타 군소 4개국, 그리고 동편의 카자흐스탄 등 투르크 5개국이 독립했다. 정치와 경제의 전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30년이 지났다. 소련 체제의 개혁에 필요했던 '시장경제 정착과 상응하는 정치발전' 실현 측면에서 발트 3국의 가시적인 진전이 눈에 띈다.

발트 3국은 정치·경제 발전 성적표에서 상위권을 형성했다. 국가적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독립 당시 여건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지리적으로는 서유럽에 가깝고 과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경험을 가진 국가가 양호한 성적을 내고 있다. 물려받은 산업화 정도도 차이가 있었다. 지리와 민족 기준으로 분류한다면 서유럽 인접지역이 상위권, 슬라브 지역이 중위권, 투르크 지역이 하위권이다.

시장경제 정착과 정치사회 체제 전환 과도기

세계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 등 부존자원 여부도 역할을 했다. 그래서 투르크 지역의 예외적인 발전 사례로 카자흐스탄이 거론된다. 슬라브 지역은 양호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가 대표적 사례인데 정치엘리트와 과두제에서 비롯된 거버넌스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전략적 완충지대를 포기하고 슬라브 연대에서 나토로 이탈을 시도하는 우크라이나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코자 하는 러시아와 충돌했다. 누적된 거버넌스 문제가 역내갈등으로 전환됐다. 코카서스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이어진 투르크 지역도 유라시아 세력균형의 변화를 초래할 잠재력을 가진 지역이다. 면적과 인구면에서 슬라브 지역과 함께 구소련의 양대 축을 형성한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의 수세국면, 중국의 중국몽 실현을 위한 일대일로의 전진, 그리고 튀르키예의 투르크 연대 강화 시도 등이 진행되면서 변화 조짐을 보인다. 어찌 보면 슬라브 지역의 정치·경제 발전은 그 결과가 지역안정이고 투르크 지역의 발전은 그 미래가 지정학적 변화이다.

투르크 지역은 산업인프라 유산이 적었다. 소련의 잔재도 많이 남아 있다. 현재의 정치엘리트들은 소련붕괴 무렵 지배층이었다. 부족적 권위주의 문화도 장애 요인이다.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일부국가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시장경제 정착은 어렵기만하다. 열악한 산업인프라는 그나마도 소수가 장악하고 있다. 나아가 국가통제가 절대적이다. 시장경제로 이행을 추진할 인력양성도 충분치 않다. 경제체제는 계획경제를 청산하고 시장경제를 지향하나 두 체제 사이의 어디엔가 머무르고 있다.

중체서용과 탈아입구의 교훈은 결국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변증법적 조화'다. 소련의 존속을 위해 요구되었던 체제개혁 필요성은 아직도 유효하며 그 결과가 초래하는 유라시아의 안정과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래서 과거로 회귀코자 하는 러시아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전쟁을 종식하고 거버넌스 문제를 잘 극복하면 슬라브 지역으로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다. 투르크 연대를 바탕으로 유라시아 내륙 진출을 도모하고 있는 튀르키예가 오랫동안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열심히 전수하면 투르크 지역에서도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슬라브 지역에 파급효과

소련 붕괴 후 30년이 흘렀다. 외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변화에는 거리가 있다. 발트 3국과 달리 구소련 다수 국가들은 세계와의 연결·소통에서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다. 세계시장으로의 물리적인 연결은 생각을 바꾸고 인프라를 개선시키는 출발점이다.

자본과 기술이 흘러들어가고 국민과 정치엘리트의 의식에 변화를 초래한다. 세계가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소를 지원하는 노력이 요망된다. 유라시아의 긍정적 변화는 더불어 사는 미래 세계의 건설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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