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수 퍼머컬처전문가, 로컬플랫폼 브랜드쿡 COO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는 두차례의 농업혁명을 통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면서 인구증가와 식량증가 사이의 간극을 예견한 18세기 후반 맬서스의 인구론을 무색케 했다. 하지만 맬서스가 예견한 비극은 오늘날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세계 인구는 여전히 늘어나지만 경작지 감소, 관개용수 부족, 화학비료의 효력감퇴, 환경오염 등으로 생산량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낙관론자들은 여전히 과학기술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최근 이러한 낙관론은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더 강력해졌다. 농업에 4차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하면 생산요소 투입의 최적화와 생산성 향상, 데이터에 기반한 유통 효율화에 의한 물류비 절감, 로봇을 이용한 인건비의 절감, 수급 안정에 따른 적정가격 유지 등을 가져올 것이며 이를 통해 농산물가격이 안정되고 기후위기를 막으며 환경과 생태계도 보전할 것이라 한다.

더 나아가 농촌의 재생에도 기대를 건다. 이러한 농업과 기술과의 융합은 관련 분야의 창업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농촌인구가 늘고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로봇에게 농부 자리 내줄 수 있을까

가장 독보적인 기술은 스마트팜이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AI 팜로봇 등의 기술을 이용해 농작물 가축 수산물 등의 생육환경을 적정하게 유지하고 PC와 스마트폰으로 자동관리할 수 있어 생산의 효율성뿐 아니라 편리성도 높일 수 있다.

현재 스마트팜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2016년 1912ha에서 2020년 5948ha로 211.1%가 늘었고, ICT를 적용한 축사도 430호에서 3463호로 705.6%가 증가했다. 스마트팜의 생산량은 도입 전과 비교해 32.1%가 늘었고 노동력은 13.8%, 병해충 발생은 6.2% 준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김제 상주 밀양 고흥에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조성하고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2022년에는 스마트팜은 7000ha로 늘리고 ICT 축사는 5750호로 확대할 계획이다.

과연 AI와 로봇이 농부를 대체할 수 있을까. 농업 분야도 예외일 수 없기에 AI와 로봇은 대부분의 농업 노동을 대체할 것이다. 그런데 농업 노동이 아닌 '농부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는 경제적·기술적 관점이 아니라 인문학적 관점이 존재한다. 질문을 뒤집어 '사람들은 AI와 로봇에 농부의 자리를 내어주고 농사짓기를 포기할 것인가'로 바꾸어볼 필요가 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보고자 찾아온 청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농사에는 수천년 역사가 있고 누구든 먹고 살아야 하니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농사와 관련된 일을 찾아내면 퇴직 걱정없이 평생 일할 수 있다. 그러니 도시에 있기보다 농촌으로 온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그런데 어느날 인터넷에 AI와 로봇이 농사를 짓는 동영상이 있는 게 아닌가. 이제 농부도 없어지겠구나, 눈앞이 깜깜했다. 필자의 노후도 걱정됐다.

그런저런 생각과 불안 속에 있을 때 김성원씨를 만났다. 그는 장흥으로 귀농해 자신의 집과 귀농한 이웃의 집을 지으며 생태건축을 연구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다. 그의 집짓기 강좌를 들은 사람 중에는 집을 지을 생각과 계획도 없고 돈도 없는데 그냥 배우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그 이유를 '건축본능'이라 했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를 짓고 만들었던 경험이, 그래서 행복했던 추억이 유전자 속에 축적되어 있다는 것이다.

본능이 지역소멸 막을 거라는 상상을

그렇다. 우리에게는 본능이 있다. '경작본능' 매연이 심한 자투리땅에 오고 가는 기름값이 더 비싼 주말농장에 고춧대를 꽂는 이유가 있었다. '목축본능' 그 좁은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분야이든 본능이 하는 일은 4차산업혁명 속에서도 남아 있을 것이다.

AI와 로봇은 농업 분야의 노동은 대체할 것이지만 경작본능을 가진 농부를 없애진 못할 것이다. 본능이 소멸하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소멸할 수 있다는 지역의 위기를 그 본능이 해결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엉뚱하지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