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책 위조책 대부업자연결책 집주인역 세입자역 세밀하게 나눠

주민등록증 심부름센터 통해 중국서 위조 … "지장 받아야 안전"

2011년 6월 강남 소규모 대부업체인 A캐피탈. 대출을 하러 온 손님은 청아주택(가칭)에서 전세를 사는 세입자 곽 모(55·여)씨. 곽씨는 사업상 급전이 필요해 전세담보대출을 받고 싶다고 했다.

캐피탈 사장 방 모씨는 날카로운 눈으로 전세담보물건부터 확인했다. 채권확보를 위해 건물등기부등본 상 근저당권, 전세권 등 권리관계를 면밀하게 살펴봤다. 채권을 확보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방씨는 대규모 대부업체도 아니고 조폭을 고용해 불법추심을 하는 악덕 사채업자도 아니기에 담보물건이 확보가 되지 않으면 대출을 해 주지 않고 있다.

방씨는 곽씨에게 전세보증금 1억6000만원에 대한 전세금 양도양수계약서를 작성하고 7000만원을 송금했다. 이자는 법정한도인 35%을 받기로 했다. 처음 석달동안은 매달 이자가 꼬박꼬박 들어왔다. 하지만 석달이 지나자 이자도 끊어지고 곽씨는 연락두절이 됐다. 그래도 방씨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채무자들이 이자가 밀리는 건 다반사고 문제가 생기면 담보가 걸려있는 전세금을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방씨는 2년이 지난후 지난 6월 담보물에 대한 법적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청아주택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엔 곽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또 집주인을 찾아가 전세금을 받으려 했지만 집주인은 전세를 준적이 없다고 했다. 방씨는 전세사기범들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고 이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들의 행방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사기영역 금융권 대부업까지 확대 =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세사기를 치던 사기단들이 최근에는 대부업체나 금융권까지 사기 영역을 무한 확대하고 있다.

지난 6월 19일 서울 강동경찰서는 집주인의 신분증을 위조해 가짜 임대차계약서를 만든 후 24개 대부업체로부터 90여차례에 걸쳐 총 101억원의 전세담보대출금을 챙겨 달아난 혐의(사기 등)로 사기단 총책 곽 모(55·여)씨 등 10명을 구속하고 인쇄업자 신 모(51)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신분증 위조책 김 모(66·여)씨 등 11명은 현재까지 추적 중이다.

경찰은 이들 대부분이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장사하다 만난 중년의 주부들로 곽씨가 계주로 있는 계모임 '동대문파'의 일원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2011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수도권 일대 매물로 나온 아파트·빌딩을 찾아 월세계약을 맺은 뒤 집주인의 인적사항을 몰래 빼내 집주인 신분증과 전세계약서를 위조, 대부업체로부터 건당 6000만~1억5000만원의 전세담보대출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대부업체의 현장실사에 대비해 월세계약을 맺은 곳에 두 달가량 실제 거주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대출문턱 낮추니 사기꾼 달려 들어" = 전세대출 사기범들의 사기영역은 금융권까지 확대됐다.

지난달 3일 성동경찰서는 위조한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전세계약서를 만든 뒤 전세대출을 받은 혐의(공문서위조, 사기)로 이 모(40)씨 등 2명을 구속하고 김 모(43)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6월 18일 성동구 응봉동 D아파트 상가 부동산에서 위조한 집주인 주민등록증으로 아파트 전세계약서를 위조하고 동부화재에 대출을 신청해 1억8000만원을 받는 등 지난해 12월부터 같은 수법으로 서울시내 아파트 2곳의 전세계약서를 담보로 4억3000만원 상당의 불법 전세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이런 수법으로 금융권을 대상으로 70억원 사기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정부에서 서민들에게 전세대출 문턱을 낮추니까 사기꾼들이 달려들고 금융기관은 제대로 검증도 못하고 대출을 해준 것"이라면서 "오히려 사채업자들보다 일반 금융기관이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 전했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계약서 작성 = 전세사기범들의 수법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 전세사기범들은 보통 총책, 위조책, 대부업자 연결책, 알선책, 집주인역, 세입자역, 바람잡이역 등으로 역할이 나뉜다.

이들은 우선 대상 아파트나 주택부터 물색한다. 조건은 단기 월세가 가능한 곳이어야 하고 가능한 집주인이 다른 곳에 거주하는 곳을 고른다. 이런 대상이 정해지면 실제 계약을 하고 단기 월세로 입주한다.

월세라도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는데 그 계약서에 집주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인적사항을 파악한 다음 집주인 나이와 인적사항이 비슷한 사람을 집주인역으로 시킨다. 이렇게 역할이 정해지면 주민등록 위조책에게 건당 300만~500만원을 주고 주민등록증을 위조한다. 이미 진짜 집주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실 거주지까지 알고 있기에 진짜 같은 짝퉁 주민등록증을 만들 수 있다.

위조된 주민등록증이 나오면 집주인역과 세입자역은 주변의 부동산중개소를 물색한 다음 적당한 곳을 선택해 들어간다. 그리고 중개인에게 "수수료를 드릴테니 전세계약서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부동산중개인은 건물등기부 등본상 권리관계와 소유자의 인적사항과 주민등록증 등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고 별 인심없이 전세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해 준다.

사기범들은 전세계약서가 작성되면 관할 주민센터나 등기소에 가서 확정일자를 받는다. 확정일자는 정부가 서민들의 전세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쉽게 받을 수 있다.

또 사기범들은 대부업체나 금융권에 신뢰감을 주기위해 법무사까지 동원해 허위로 전세보증금에 대한 공증을 하고 집주인에게 채권양도 내용증명까지 발송한다.

사기범들은 가짜로 만든 전세계약서를 한번만 사용하지 않고 위조책에게 세입자 이름만 바꿔 여러장을 만들어 각종 대부업자들을 찾아다니며 대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만 주면 주민등록증 위조 = 전세대출사기의 핵심은 주민등록증 위조에 있다. 경찰에 따르면 주민등록위조 알선책은 중국과 선이 닫아 있다. 국내 주민등록 위조책은 일반적으로 심부름센터 등을 운영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인적사항을 불법으로 모은다. 또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에서 주민등록증 위조를 원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10여건 이상이 되면 인적사항과 사진을 이메일로 중국 위조책에게 보낸다. 중국위조책은 이들 인적사항이 확보되면 특수프린트기와 엠보싱기, 프레기 등을 이용해 위조 주민등록증을 찍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위조 주민등록증은 국제 특송이나 전달책을 통해 국내로 들어온다. 이같은 위조 주민등록증은 대포통장 개설이나 보이스 피싱, 전세사기대출 등에 사용된다.

경찰 관계자는 "위조 주민등록증 제작비는 보통 1개 200만원부터 1000만원까지 다양하다"며 "경찰이 봐도 육안으로 식별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날로 진화하는 전세사기범들의 수법을 개인이 방어하기는 쉽지 않다. 전병중 강동경찰서 경제3팀장은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던 주민등록증 확인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계약을 할 때 서명을 하고 추가로 지문을 받으라고 이야기 한다"며 "부동산 안심거래와 피해예방을 위해서는 민간조사법이 빨리 시행돼 공신력있는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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