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27일 서울 둔촌주공 재건축 시공사업단(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위해 발행한 7000억원+α 규모의 '둔촌주공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차환발행(이전 사채가 만기가 되어 그 원리금 상환을 위해 새로운 채권을 다시 발행하는 일)이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PF는 '(미래)사업'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자금을 대출해준 대주나 발행된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는 후에 일반분양을 통해 분양받은 사람들에게서 계약금 중도금 잔금 등(모자라는 경우는 조합원이 추가로 분담금을 부담한다)으로 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차환발행을 성사시키기 위해 금융당국이 채권안정펀드(채안펀드)를 동원했다는 데 있다. 민간 주택조합의 재건축사업을 위해 발행된 사채의 차환발행에 일종의 공적자금이 동원된 셈이다. 알려졌듯이 이 단기사채는 10월 21일 이미 한차례 발행에 실패했다. KB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채권발행 주간사들이 투자자를 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채권에 보증을 선 시공건설사들이 사전에 보증한 금액대로 각기 1645억~1960억원을 분담해 건설사 자체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들에게 우선 갚고(대위변제) 나중에 조합원들에게서 돌려받는다. 조합은 일반분양을 통해 당첨자들에게서 받은 돈으로 이를 지불하는 구조다.
애초 둔촌주공PF는 24개 대주단의 대출로 자금을 조달했으나 조합내 집행부간 분쟁, 그리고 조합과 시공단(건설사)간의 분쟁을 거치면서 2022년 6월 기존 대주단이 대출에 대해 만기연장을 거부함으로써 문제가 불거졌다. 그 후 단기사채 발행을 통해 시간을 늘려오다가 결국 만기가 돌아왔고 더 이상의 차환발행이 어렵게 된 것이다.
'대표' 우량 건설사 위해 동원된 펀드
이 분쟁과정에 깔려 있는 이권다툼은 기존 언론 보도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결국 사업주체의 이권다툼을 배경으로 한 분쟁이 대주단의 대출만기 연장거부를 낳은 근본 원인이라 해야 할 것이고, 시간을 끄는 동안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경우가 그렇듯이 6100여명에 달하는 '선량한' 일반 조합원들이 1인당 1억8000만원이라는 그동안 불어난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대표 우량 사업장인 둔촌주공이 PF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채권 만기연장에 실패한다면 부동산시장에 과도한 주름살이 갈 것"이라고 금융당국이 채안펀드를 동원해 막아 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채안펀드를 통해 한 것은 '대표' 우량 건설사인 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이 자체 부담하게 되어 있었던 자금을 대신 지원해 준 것에 불과하다. 더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시공사인 롯데건설은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와 계열사 차입에 나서 둔촌주공 PF가 차환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시공사들이 버티면 결국 피해가 '선량한' 조합원들에게 미치기 때문에 채안펀드의 동원은 불가피했을 수 있다. 하지만 씁쓸한 부분이 남는다. 향후 채안펀드는 PF시장 호황기에 자기 리스크 관리없이 마구잡이로 뛰어 들었던 부동산 개발 관련주체들이 나누어 뜯어 먹는 눈먼 생선으로 전락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우려가 그것이다.
'대표' 대형 건설사들부터 전례를 만들었으니 더욱 그렇다. 2011년 PF부실로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가 그랬고, 2020년 초 코로나 사태로 PF시장이 무너졌을 때도 그랬다. 증권사 저축은행마다 호황기에는 수백억원의 수익을 자랑하다가, PF시장이 무너지면 '선량한' 서민의 주거를 볼모로 당국과 공적 돈을 끌어다 메운다.
이미 지난 8월경이면 PF에 대한 증권사와 저축은행 등 관련 금융기관의 대출이나 채권의 대환과 차환발행거부 사태가 줄을 잇고 있었다. 이자율이 오를 것(채권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 뻔한데 왜 지금 채권을 사겠는가. 나중에 사야지.
재발방지도 책임도 묻지 않고 돈 뿌리기
강원도는 가장 나쁜 시간대에, 굳이 저잣거리말로 하자면 '설거지' 시간에 섣불리 발을 들여 놓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는 갑자기 이야기는 정치적 공간으로 옮겨가서 정쟁의 주제가 되어버렸고, 무엇에 놀랐는지 정부는 수조원을 원인과 결과를 앞뒤로 재지도 않고 덥석 뿌렸다.
앞으로 수십조원+α를 뿌린다니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증권사 저축은행들은 물론, 굳이 지원하지 않아도 될 대형 우량 건설사들까지 혜택을 누리게 될까 봐 하는 우려다. 재발 방지책과 책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보니 앞으로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올해 30조~40조원에 이른다는 적자를 메우고, 매년 6조원 규모의 기본 투자를 실행해야 한다는 한전의 회사채 발행을 야단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금리를 급히 올려 긴축을 해야 한다고, 돈을 열심히 거둬들여야 한다고 바쁜 한국은행의 정책방향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