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자금시장의 '바로미터'인 91일물 A1급 기업어음(CP) 금리가 17일 오후 최종호가 기준(금융투자협회 kofiabond) 5.30%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 13일(5.37%) 이후 13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CP 금리는 지난 9월 22일부터 38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경신해 오고 있다. 돈줄이 급한 기업들이 CP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의 서열인 국채·지방채·공공채→금융채→회사채→기업어음(CP)→유동화증권(ABS) 순으로 금리 스프레드는 확대된다. 자금시장 경색을 풀기 위해 정부가 긴급대책을 내놓았지만 단기자금시장에는 냉기가 여전하다.

금융시장 구조적 위기 요인 도사려, 정부 대책에도 단기채 시장 경색 여전

최근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이 둔화하면서 1400원대 강달러 현상이 완화되자 국채금리와 우량 회사채 시장이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 상황에서 벗어나 일부 진정세를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흐름이다. 부동산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대표되는, 자본시장에서 신용위기 리스크에 노출된 건설회사와 중소형 증권사의 회사채, CP, 프로젝트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이 터지기 일보직전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계속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고강도 긴축과 다가올 경기 침체 등 금융시장의 구조적 위기징후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기도 하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만기도래 예정인 PF-ABCP와 PF-전자단기사채(ABSTB) 규모는 34조원대로 차환이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주택과 상가, 물류센터 등 비주택 수익형 부동산담보대출에 깊숙이 얽힌 저축은행과 지역 농수축협 신용협동조합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등 약 3700여개 상호금융들의 400조원대(2021년 기준) 대출 역시 잠재적 부실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2021년 12월 13일자)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나라 가계 기업 정부 부채를 합한 국민경제 전체의 부채인 '매크로 레버리지'가 2020년 이후 GDP 대비 254%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매크로 레버리지 비율상승의 77%가 민간부문에서 일어났고 특히 가계부분 부채 상승률이 가장 빠르다. 금융 혹한기에 부동산에 연계된 가계대출과 부동산 PF 부분에서 문제가 터질 소지가 많다.

금융위원회에서 가계부채 정책을 담당했던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저서 '격변과 균형'에서 복합위기 상황이 오면 가계부채가 제일 부담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그는 한국은행의 '가계신용' 데이터만 적용, 2021년 3월 기준 1765조원으로 가계부채의 범위를 축소한 것에 대한 키움증권 서영수 애널리스트의 문제제기(책 '2022년 피할 수 없는 부채위기')를 인용한다. 가계신용에 소규모 개인사업자와 비영리단체 채무를 포함한 2052조원 규모의 '개인금융부채'로 범위를 넓히고, 여기에 개인사업자 대출 254조원과 한국만의 독특한 사금융 영역이자 갭투자 등에 동원되는 전세금(임대보증금채무)864조원을 추산해 합산한 3170조원, 국내총생산(GDP)의 162%에 달할 만큼 심각한 규모를 가계부채 총량으로 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다.

단기자금시장 경색 등 유동성 위기 내년에 몇 차례 더 올 수 있다는 경고음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이 흥미로운 연구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연준의 급속한 기준금리 인상과 사전안내(포워드 가이던스), 대차대조표 축소(양적긴축 QT) 등 다양한 긴축정책을 고려하면 금융긴축 효과가 지난 9월 발표된 기준금리보다 약 2%p 상승한 5.25% 수준에 이르렀다는 추정이다.

이는 11월 FOMC의 4% 기준금리 결정을 반영하면 미국의 실질적인 금리 수준이 6%에 달했다는 의미이고, 내년 최종금리(terminal rate)가 5.25~5.50%에 이른다면 실질 금리는 8% 수준이 된다는 뜻이다. 연준의 QT는 9월 들어서부터 950억달러의 목표치에 근접하게 보유자산을 급속히 줄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더 높일 수밖에 없고 자금시장의 유동성은 더욱 고갈될 것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인상이 계속되면 부동산 경기는 더 급속히 얼어붙고, 고정+변동금리의 주택담보대출을 가진 가계의 상환위험은 더욱 커지며, 부동산 PF 연계금융의 자금조달 상황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번의 단기자금시장 경색과 같은 유동성 위기가 내년에 몇차례 더 올 수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린다. 가계 기업 정부 모두 더 긴장해야 할 때다.

안찬수 오피니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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