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cancel

내일신문

[내일시론]

무신불립(無信不立)의 교훈 잊었나

등록 : 2022-11-22 11:31:15

윤석열 대통령은 21일부터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을 중단했다. 그 까닭은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 때문이라 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더구나 대통령실이 기자단에 MBC 기자 징계까지 요구해 사태해결이 더 막막해졌다.

이로써 윤 대통령 취임 후 가장 큰 변화로 자랑해 온 약식회견이 취임 6개월여 만에 사라지게 됐다. 중단조치와 함께 대통령실은 기자실과 약식회견 장소(로비)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했다. 이 또한 취재제한 조치가 되었다.

대통령실 인식에 동의하는 국민 얼마나 될까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해 온 대통령 결단의 시비를 따지기 전에, '불미스러운 일'의 성격부터 가려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지난 18일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MBC 기자의 동남아 순방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와 관련해 "가짜뉴스로 (동맹국과 우리나라를)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 행태를 보였기에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그러자 MBC 기자가 윤 대통령을 향해 "MBC가 무엇을 악의적으로 했다는 거죠?"라고 물었고,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이 "가시는 분 뒤에 그렇게 대고 말하면 어떡하느냐"고 나무란 게 도화선이 돼 기자와 비서관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이후 여권에서 MBC기자의 발언 태도가 무례하고, 슬리퍼 차림의 복장이 불량하다면서 '난동' '훌리건' 같은 비유와 함께 버릇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당일 그 뉴스를 TV로 본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돌아서는 대통령을 향해 '무엇이 악의적이냐'는 당사자 질문은 당연하다. 거기에 비서관이 끼어들어 "뒤에 대고 그러지 말라"고 한 게 언쟁의 발단이다.

가짜뉴스라는 것은 윤 대통령의 유럽 미국 순방 당시 미국에서 일어난 비속어 발언 파동을 말한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XXX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한 말이 카메라 녹음기에 잡혔다. 한 현장 기자가 라디오에서 한 증언에 따르면, 당시 풀 기자였던 MBC 기자 카메라에 녹음된 이 말을 여러 기자와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몇번이고 반복해 듣고 내린 결론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였다 한다.

그래서 MBC를 포함한 여러 방송사와 신문들이 그렇게 보도하게 되었다는 게 그의 증언이다. 그 보도는 모든 방송이 같은 내용으로 나갔다. MBC가 다른 방송보다 앞서 자막처리를 했지만 다른 언론도 바로 뒤따랐다. 그 녹음은 잡음을 최대한 걸러낸 상태에서 되풀이 방송되었다. 녹음을 들은 국민의 70%가 비속어와 '바이든'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여론조사도 발표되었다.

국민은 이런 경위를 안다. MBC가 보복을 당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통령의 조치는 석연치 않아 보였다. 그런데 동남아 순방 취재단에서 유일하게 MBC만 대통령 전용기 탑승이 배제되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MBC를 응원하기 위해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야당에서는 '졸렬한 보복' '좁쌀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가짜뉴스로 동맹국 사이를 이간질했다'는 대통령의 인식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이 한 말을 가짜뉴스로 몰아세운 것은 또 어떤가. 그 말을 한 사람은 윤 대통령이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일이 터지고 15시간 만에 이 사안에 대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발표했다. '이 XX들' '쪽팔리면' 같은 비속어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국민 신뢰가 정치의 요체라는 건 영원한 진리

2500년 전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에 '민신지의'(民信之矣)라는 말이 있다. 정치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묻는 자공(子貢)에게 공자는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 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시쳇말로 경제, 국방, 국민의 신뢰가 필요하고 한 것이다. "셋 중에 부득이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이냐"는 자공의 물음에 공자는 "족병"이라고 했다. 남은 둘 가운데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족식"이라 했다. 국방과 경제를 포기하더라도 민신은 버려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말이라고 비현실적이라 할 것인가. 국민의 믿음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 영원한 진리임을 정말 모르는가.

문창재 본지 칼럼니스트

twitter   facebook   kakao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