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을 힘차게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 공기업을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의 땅과 건물 등 부동산을 매각하게 하고, 골프회원권 주식 등 동산도 대거 처분하게 하겠다고 했다.

지난 11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확정된 공공기관 자산효율화 계획에 따르면 177개 공공기관은 자산 519건과 출자지분 275건 등 총 14조5000억원 상당의 자산을 내놓기로 했다. 한국철도공사의 용산역세권 부지(매각 예정가 6조3146억원)를 비롯해 한국마사회의 서초 부지(1385억원), 한국교육개발원의 서울청사 등 제법 값나가는 물건이 적지 않다. 한전KDN과 마사회는 YTN 지분 31%를 내놓고, 기업은행은 한국투자금융지주 지분 2%를 판다. 또 한국전력 등 8개 기관은 골프회원권 15구좌를, 조폐공사 등 92개 기관은 콘도와 리조트회원권 2298구좌를 정리하게 된다.

전문성 부족한 낙하산 인사로 개혁의지 빛바래

매각대상이 된 것은 업무와 상관없는 부동산이거나 골프회원권과 콘도·리조트회원권 등 굳이 필요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자산들이다. 이를테면 교육개발원은 과거 노무현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방침에 따라 충북 진천으로 이전했다. 그랬으면 서울청사도 진작에 정리해서 민간사업자에게 공급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껏 정리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한전기술과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의 기관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미련이 남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언젠가 정권이 바뀌면 서울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혁신도시로 이전한 후에도 옛 본사를 왜 굳이 지키고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반면 한국전력은 전남 나주로 이전하고 서울 삼성동 본사건물을 현대차그룹에 매각했다. 떳떳하고 담백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행동에는 동일한 책임이 따른다. 그럼에도 일부 공공기관들이 필요도 없어진 자산을 굳이 보유하고 있었다. 같은 공공기관 사이에도 이렇게 다르니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그렇게 맹목적으로 유휴자산을 갖고 버티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업무면적을 줄여 남은 공간을 임대하고 기관장·임원의 사무실 면적도 축소해야 한다. 따라서 공기업 공간에 끼어있는 거품이 빠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상당히 의심스럽다. 앞에서는 개혁드라이브를 걸면서도 뒤로는 낙하산 인사를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지난 18일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최연혜 전 의원과 정용기 전 의원을 각각 사장으로 선출했다. 이들은 이사회와 주총이라는 형식을 거치기는 했지만, 사실상 '상부'로부터 권력의 후원을 받아 줄타고 들어갔다. 두 인물은 윤석열 대통령 선거캠프의 일원이었고 전문성이 허약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한수원 사외이사에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선임됐다가 스스로 물러나기도 했다.

낙하산 인사는 사실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악습이다. 역대 정권마다 낙하산 인사 근절을 약속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특히 전문성도 없는 인사를 내려보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체로 좋지 않게 끝났다.

윤 대통령은 그런 악습을 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선거과정에서 캠프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그렇지만 취임 6개월여 만에 그 약속을 가볍게 뒤집었다. 과거 정권의 경우 임기초반에는 낙하산 인사를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임기 벽두부터 감행했다. 그러니 앞으로 4년반 동안 공기업 인사 때마다 전문성없는 캠프출신 인사나 정치인들로 채워나갈 것 같아 걱정된다.

취임 6개월 만에 낙하산 인사 근절 약속 뒤집어

그렇기에 윤석열정부의 공기업 개혁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무엇을 위해 공기업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저 맹목적으로 공기업 직원들 기강을 잡고 정권에 대한 충성을 얻어내려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것이다. 또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는 의심도 하게 된다.

진실로 공기업을 제대로 개혁해 바로세울 의지가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우선은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 첫 관문은 무리한 낙하산 인사부터 그만두는 것이다. 특히 업무경험이나 전문성도 없는 인사를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히는 일이 더는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