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준 대법관, 123일만에 취임 … "양자택일 않고 정답 찾으려 노력"

오석준 신임 대법관이 28일 취임하면서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 매각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주목된다. 오석준 대법관은 미쓰비시측이 특허권 특별현금화(매각) 명령에 불복해 재항고한 사건의 주심이었던 김재형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사건을 승계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의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4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사죄와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원은 자산 매각 명령을 내리는 등 일본을 다각도로 압박하고 있지만 외교적 상황이 걸려 실제 배상까지는 여전히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의 입장이 모호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오 대법관이 주심을 맡으면서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옛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지난 2012년, 2014년, 2015년 3차에 걸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중 김성주(93), 양금덕 할머니 등 피해자 5명은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2018년 11월 29일 승소 판결을 확정 받았다.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원에서 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단 한건의 손해배상도 이행하지 않으며 사건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법원은 미쓰비시가 보유한 한국내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을 압류하는 강제절차를 진행했다. 이어 대전지법은 지난해 9월 피해자들의 신청에 따라 압류한 상표권과 특허권에 대한 매각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한국 법원의 자산매각 명령에 불복하고 올해 4월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미쓰비시측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고, 한국 법원의 판결과 절차가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이 사건의 주심이었던 김재형 전 대법관이 지난 9월 퇴임할 때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서 대법원이 결정을 미룬 채 한일 정부 간 외교적 해결책을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오 신임 대법관이 새롭게 주심을 맡았지만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기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미쓰비시 자산매각 결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외교부가 최근 재판부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는데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학 선후배 사이인 오 대법관이 정부 정책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결정을 미룰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박진 외교부장관은 민관협의체 운영 종료를 앞두고 지난 9월 광주를 찾아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를 만나 조속한 해결을 약속했다. 민관협의체가 운영을 종료하며 사실상 '최종안' 마련에 착수했지만 그 내용이 피해자 측과 일본 정부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이 될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민관협의회 이후 공개 토론회 등 방식으로 추가 여론 수렴 절차를 밟을 것임을 시사하면서 해법 논의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계속되고 있다.

오 대법관은 28일 대법원에서 가진 취임식에서 "시대의 변화를 객관적이고 균형감 있는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살펴보겠다"며 "손쉽게 가치관에 따른 양자택일을 하지 않고 정답에 가까운 그 무엇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파주 출신인 오 대법관은 서울 광성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두 차례 법원행정처 공보관을 지냈으며 제주지법원장을 거쳐 윤 대통령이 임명한 첫 대법관이 됐다.

오 대법관의 국회 인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야권은 800원을 횡령한 버스 기사 해고가 정당하다고 본 2011년 판결 등 과거 오 대법관이 내놓은 법적 판단을 문제 삼았다. 윤 대통령과 대학 시절 알고 지낸 사이였음이 밝혀지면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을지 의심을 사기도 했다. 여야 대립까지 겹쳐 넉 달 가까이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다 지난 24일 통과됐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김선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