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송 위스콘신대

얼마 전 미국의 중간선거가 민주당의 예상 밖 선전으로 끝났다.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높을 경우 보수정당보다 진보정당에 유리하다. 이번 선거에서도 젊은층과 여성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대거 몰리면서,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애리조나와 펜실베이니아 지역의 중간선거 투표율이 대선에 육박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학자들은 오랫동안 개인의 시간 사용에 관심을 가져왔다. 정치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학자들은 투표율과 유권자의 시간이 매우 높은 관련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예를 들어 정치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는 시민이 정치참여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예측한다.

설문조사에서도 비투표자들에게 투표하지 않는 이유를 질문해보면 대다수 응답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미국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투표 등록에 필요한 시간, 투표소를 찾아 이동하는 시간 등 지역마다 필요한 시간에 따라 투표율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서쪽 선거구, 동쪽보다 투표율 낮아

직업이나 가족, 기타 다양한 이유로 바쁜 유권자는 투표에 필요한 시간만을 고려해서 투표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더 광범위한 시간 관련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 그러면 개인이 느끼는 시간적 차이가 투표율 결정에 영향을 미칠까?

이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뮌헨대학의 셰퍼 교수와 버지니아대학의 홀빈 교수는 미국의 다양한 시간대를 중심으로 시간과 투표율과의 관계를 밝히고자 했다. 미국엔 하와이와 알래스카까지 포함해 총 6개의 시간대가 있다. 미국의 주 대륙만을 고려하면 서부와 동부의 시차는 3시간이지만, 하와이 지역까지 포함하면 5시간까지 벌어진다. 같은 주에 살더라도 다른 시간대에 놓인 지역들도 있다.

미국 내 시간대 설정은 철도의 역사와 함께 한다. 19세기 초중반, 미국인들은 태양이 가장 높게 떠오른 시간(자오)을 정오로 해, 그들이 사는 지역의 기준시간으로 정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 다양한 태양 정오 시간이 통용됐다. 그런데 1869년 개통된 미국대륙횡단 철도의 출발지 시간과 중간 도착지 시간, 최종 목적지 시간이 모두 달라 혼란이 초래됐다. 결국 1883년 4월 세인트루이스의 시간총회에서 미국철도연합은 각 지역에서 사용하던 50여개의 시간을 4개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것이 바로 '표준시'의 기원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대 차이가 미국인의 정치적 행동, 즉 투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셰퍼 교수와 홀빈 교수는 미국 시간대 경계의 서쪽에 있는 선거구에 비해 동쪽에 있는 선거구의 투표율이 1.5~3%p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효과는 공화당에 더 유리한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이 현상의 원인까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대 변화가 미국인들의 정치적 활동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원인이 특정 지역의 투표율 차이를 유발하고 미국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주기 리듬도 투표율에 영향 미쳐

그렇다면 이러한 효과를 유발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연구자들은 시간대와 관련해 그동안 진행되었던 타 분야들의 연구를 통해 해답을 찾고자 했다. 일주기 리듬과 이에 따른 개인의 행동 변화가 그것이다. 일주기 리듬이란 약 24시간을 주기로 사람의 행동 및 생리현상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생체시계에 따라 낮에는 깨어 있고 밤에는 자는 것 또한 일주기 리듬 때문이다.

일주기 리듬과 정치적 행동은 언뜻 보기에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어떻게 이들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매우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 A와 B를 생각해 보자. 시간대 경계가 없다면 두 사람이 마주하는 일출 및 일몰 시각은 사실상 같을 것이다. 즉, 그들의 일주기 리듬은 비슷하고 거의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 것이다.

이제 정부가 A와 B 사이에 임의의 선(시간대 경계)을 그어 A(경계의 동쪽)가 B(경계의 서쪽)보다 1시간 늦은 시간대에 살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결정으로 두 사람이 마주할 일몰 시각은 달라졌다. A의 경우 오후 8시, B의 경우 오후 7시가 일몰 시각이다. 이로 인해 A의 취침 시간은 이전보다 1시간 더 늦게(오후 11시) 설정되었지만, B는 여전히 오후 10시에 수면 신호를 받게 된다. 결국 A가 B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일어나는 시간은 출근시간 등 사회적 일정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두 사람 모두 다음날 업무를 위해 각자의 시간대에서 동일한 시각에 일어나야 한다면 결과적으로 사람 A의 전반적인 수면 시간이 B보다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연구진들이 비교해본 결과, 시간대 경계의 동쪽에 사는 주민들은 권장 일일수면 수준(최소 7시간)을 달성할 가능성이 5%p 낮았다. 대신 줄어든 수면 시간만큼 동쪽에 사는 미국인들은 여가시간을 누리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수면부족 때문에 서쪽에 거주하는 시민들에 비해 누적된 피로를 더 느낄 수밖에 없다. 즉 수면부족과 피로누적은 유권자의 투표 가능성을 낮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시간대 경계의 동쪽에 사는 사람들이 아침 1시간을 더 얻기 위해 서쪽에서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통근하게 되면 투표시간이 끝나기 전에 지역구로 돌아가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쪽에서 오후 6시에 퇴근하고 동쪽에서 투표가 오후 8시에 마감되는 경우 서쪽 지역에서 일하는 동쪽 주민에게 투표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1시간밖에 없다. 이에 비해 동쪽에서 일하면서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투표할 수 있는 추가시간을 1시간 더 확보할 수 있다.

시간대 차이는 TV 일정을 통해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TV 네트워크는 일반적으로 동부 및 중부 시간대에서 동시에 방송되는 '동부 피드'와 태평양 시간대의 '서부 피드'를 방송한다. 산악 시간대의 네트워크는 동부 시간대에서 1시간 지연된 3번째 피드를 방송할 수도 있다.

이러한 TV 일정의 잠재적 결과 중 하나는 선거와 관련된 지역 언론보도가 시간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투표소가 열리기 전 동부 지역에는 아직 열려있는 투표소가 없으므로 그 지역의 아침 언론보도는 곧 시작될 선거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러나 중부 지역 시간대에 있는 유권자가 깨어났을 때는 투표가 이미 시작된 동부 지역의 보도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산악지역 표준시와 태평양 시간대의 유권자들은 동부 지역의 투표가 이미 2시간~3시간 전에 시작되었다는 보도를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미묘한 언론보도의 차이조차도 유권자의 투표 여부에 심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자유시간이 시민참여 수준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존의 투표 자원 모델 예측과는 다르다. 즉 시간대의 차이와 일주기 리듬의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정치참여 차이의 미묘한 관계를 반영하기 위해 수정될 부분이 있음을 시사한다.

편의를 위한 시간대가 인간 행동 제약

넓은 영토를 지닌 미국이기에 다양한 시간대가 설정돼 있고, 이에 따라 개인의 행동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앞서 말한 시간대의 차이로 인해 유발된 수면부족은 개인의 건강 상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는 한편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유권자에게 시간이 균등하게 배분된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정치 참여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그어진 단 몇개의 선이 인간의 행동을 제어했다.

김찬송 위스콘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