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요란하던 황소개구리도 결국은 한철이었다. 군부독재 시절 서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수입했던 큼지막한 외래 개구리는 가두리를 벗어나면서 급속히 번성했다. 곤충류와 물고기는 물론 천적인 뱀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전국의 강과 호수는 황소개구리 천하가 됐다.

국민적 원성에 환경부는 1990년대 중반 황소개구리를 생태교란종(種)으로 지목하고 전쟁을 선포했다. 장관이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력에 좋다더라"며 시식도 했다. 그런 노력 때문일까. 2000년대 후반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는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당국의 대처도 주효했겠지만, 그보다는 자연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고 학계는 본다. 처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생태계가 천적의 재발견으로 맞섰다는 거다. 가물치와 메기가 황소개구리 올챙이 맛을 알게 되고, 백로 왜가리 족제비 수달들이 단백질 많고 굼뜬 먹이에 눈을 떴다는 거다. 대대적인 토종 천적의 반격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천적만 부추기지 않았다.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습지에서는 먹이부족으로 동종 포식까지 벌어졌다. 학자들은 특히 근친교배로 인한 자연도태에 주목했다. 유전자 풀(pool)이 적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거다. 다양하지 못한 유전자 집단은 멸절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개체수가 환경저항 선에서 균형을 잡아 생태계가 안정화됐다고 한다. 황소개구리의 '이기적 유전자' 처지에서 보면 종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멸절사태로 몰린 원인이겠다. 한때 요란했던 충북 청주 무심천에서 분포도 '0'를 기록할 정도로 서식지도 개체수도 쪼그라들었다.

자연도 사회도 다양성 확보 못하면 멸절

어디 자연생태계만 그러하겠나. 사회도 마찬가지겠다. 특히 다양성의 산실인 학문의 전당이 더욱 그렇다. 미국 대학을 보자. 하버드대학교는 지난 15일 차기 총장으로 클로딘 게이 대학원장을 선임했다. 하버드대 최초의 흑인 총장이다. 아이티 이민자의 딸이다. 여성으로서는 드류 길핀 파우스트 전 총장에 이어 두번째이다. 헌데 출신 대학이 묘하다. 게이 차기 총장은 하버드대가 아닌 스탠포드대 경제학 학사이다.

그러고 보면 하버드대의 앞선 총장들도 타 학부 출신이 많다. 현 로렌스 바코 총장은 MIT 경제학 학사다. 앞선 파우스트 총장은 브린 모 대학을 졸업하고, 펜실베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브린 모 대학은 재적학생이 1425명에 불과한 지방 소재 여자대학이다. 굳이 미국 내 대학서열을 따지자면 하버드대나 스탠포드대 같은 종합대학을 제외한 단과대학 중 31위(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 2022~2023)다.

하버드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스탠포드대 마크 테시에-라빈 총장은 캐나다 출생으로 몬트리올 소재 맥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영국 옥스포드대 석사를 거쳐 런던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뇌과학자다. 예일대 피터 샐러비 총장은 스탠포드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취득한 사회심리학자다.

그야말로 미국의 3대 명문대학 총장들이 모두 타 대학 학부 출신이다. 우연이 아니다. 최고의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는 다양성과 개방성 확보가 중요한 거다. 학문도 동종교배는 멸종의 길이다. 생물다양성이 건강하게 균형 잡힌 생태계에 필요조건인 것처럼 학문과 배경의 다양성 또한 지속가능한 미래 학문의 바탕이다.

짐작했겠지만 우리 대학은 보지 않아도 빤하다. 서울대 오세정 총장은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이다. 연세대 서승환 총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고려대 정진택 총장은 고려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이화여대 김은미 총장은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이다. 모두가 소속 대학 학부 출신이다. 공통점도 있다. 예외 없이 '미국 박사'이다.

동종집단화는 종종 정부 운영에서도 나타난다. 정권의 향배에 따라 특정 군사집단이나 지역, 그룹 출신들이 득세했다. 윤석열정부에서는 서울대 학벌과 검찰 직역이 우점종이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며 능력주의를 내세우지만, 학벌주의로 배제된 인재들의 가슴에 못을 두번 박은 셈이다.

지금은 언필칭 집단지성의 시대다. 소수 엘리트가 피라미드의 꼭지점에서 상의하달(上意下達)하는 구태는 민주주의도 능률주의도 아니다. 다양성의 시대에 개방과 공유를 바탕으로 개성이 꽃을 피워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구성원 모두는 터미널이면서 동시에 허브가 아니겠나.

'당심 100%' 21세기 사회생태계와 맞나

동종집단 스크럼은 배제와 차별이다. 스크럼 밖과 공감을 거부하는 거다. 끼리끼리 격려하지만 사회적 도태의 위험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천적은 투표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집단 내 의식(意識)의 근친교배가 재생산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이런 것이 사회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 룰도 당심 100% 반영으로 결정됐다. 글쎄다. 다양성을 배제한 끼리끼리 의식이 21세기 사회생태계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머지않아 판가름날 일이다.

박종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