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살다 보니 점점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각종 사회적 사건사고가 빈번하더니 급기야는 지자체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등장했다. 주거지 파악이 힘드니 구석구석 발굴단이란 이름으로 배달원과 검침원을 쓰겠단다. 대단한 잔머리이자 탁상행정의 결정판이다. 공무원들은 의자에 앉아 결과만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닌가.

공무원조직의 첫째 임무는 국민에 관한 두가지 데이터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름 아닌 성명과 주소. 그러나 우리는 개인신원을 성명과 주소로 식별하지 않는다는 데 원천적인 문제가 있다.

그 대신 무얼 쓰고 있을까. 바로 주민번호다. 민원인이 전입신고를 정확하게 하지 않아 공무원들이 옛 주소로 찾아갔다는 기사가 종종 등장한다. 공무원측 주소파악 오류로 사회복지 지원대상에서 시스템적으로 자동 제외되는 경우가 흔히 벌어진다.

보통 사태 발생 후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처방은 현장 공무인력을 늘려서 위기 가구 발굴에 더 힘을 써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주민 찾아가는 방법이 시스템적으로 고쳐지기 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반면 택배회사나 전기회사가 정부보다 똑똑하다. 그들은 성명과 주소에 입각해 처리한다. 전기요금 독촉장을 실거주지로 정확하게 배달한다. 이 방식이 놀랍게도 전세계 다른 나라에서 채택하는 행정 처리 방식이다.

주거 파악에 택배원 쓰겠다는 탁상행정

이번 화물연대파업 대비 과정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국무회의에서 여러 업종 파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의결되자 정부는 시멘트 운송 차주들에게 업무개시명령 송달 절차에 착수했다. 화물 차주인 화물연대 노조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면서 해당 명령을 서류 형태로 송부해야 하는데 차주 주소 파악에만 2~3일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보도됐다. 이게 정상적인 일인가.

데이터의 생명은 무결점 혹은 무결성에 있다. 주소를 청구기관은 잘 알지만 정부는 전혀 모르는 이율배반적인 사례, 즉 주소에 대한 데이터 값 불일치 현상이 발생할 때 무결성, 즉 질이 훼손됐다고 한다. 행정용 거주지 값(주민번호와 연계된)과 실거주지 값(실제 거주지)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불일치가 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행정 편의상 주민번호를 선호하는 까닭이다. 정부는 정확한 실주소 파악에는 관심이 없고 행정주소에만 혈안이 돼있는 것이다.

데이터의 다른 생명은 속도다. 데이터 값이 현실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 한마디로 죽은 것이다. 이번 축구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의아한 것 중 하나는 국가 랭킹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예로 벨기에가 세계 2위로 평가됐으나 실제로 그 위치와 거리가 상당히 먼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실시간 업데이트를 소홀히 한 탓일 것이다.

질은 좋은데 속도가 느리다면 문제이며 또한 속도는 빠른데 질이 떨어진다면 그것도 문제다. 축구경기에서 골이 경기장 밖으로 나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14대의 카메라가 초당 500장의 사진을 실시간으로 찍어 단 1초내로 정확히 판별한다. 따라서 정확성과 더불어 속도가 충족돼야 한다.

데이터의 질과 속도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면 개인 신원 판별에는 주민번호 대신 다른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 그게 바로 선진국이 쓰는 성명과 주소다. 이런 방식을 쓰면 주소값 불일치가 발생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선진국에서 주민번호 같은 식별방식이 채택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스토킹을 막아야 할 경찰이 피해자 주소를 가해자측에 제공했다면 아연실색할 일일 것이다. 공개 불가능한 피해자 민감 데이터가 있다면 가려진 채 송달돼야 한다. 수사규칙에 따르면 피해자 주소가 담긴 문서를 가해자에게 보내서는 안된다. 가해자에게는 불복방법이 적힌 조치통보서를 보낼 수 있으나 문서 안에 피해자 성명과 주소가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전혀 여과없이 경찰에 의해 전달된 사례가 최근 다수 발견됐다. 민감 데이터를 그대로 보냈다는 것은 경찰조직에서 데이터 보호 의식도 없었다는 증거다.

데이터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방법

놀랍고도 참담한 대목은 가해자가 이미 주소를 알고 피해자 집까지 찾아갔던 만큼 주소가 기재된 문서를 보내더라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는 게 통상적인 경찰 측의 설명이다. 왜 그런 판단이 가능할까. 주민번호는 데이터로 보고 주소는 데이터로 보지 않는 공직사회 패턴으로 인해 생긴 어처구니없는 해석인 것이다.

데이터시대를 살아가려면 데이터의 진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각종 디지털 용어에 현혹되기 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서 주소가 주민번호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소는 자연적인 것이나 주민번호는 인위적인 것이다. 디지털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데이터 감각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