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소중성자포획치료 임상시험 시작 … 1∼2회로 재발·수술 어려운 암 치료 진전

우리나라 최근 5년간(2016년∼2020년) 진단받은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이 71.5%로 높다.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의료용 가속기를 병원에 설치할 수 있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중성자를 이용한 새로운 암치료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붕소중성자포획치료법으로 최근 국내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외국의 임상사례에 따르면 5년 생존율이 낮은 '교모세포종' 등 수술이 어려운 암 치료에 특장점을 보이고 있어 국내 암환자들에게 새해 희망을 안겨준다. 중성자포획치료기와 의약품을 개발한 다원메닥스에게 중성자 치료 등에 대해 물었다.

다원메닥스가 국내 기술로 개발한 붕소중성자포획치료 시스템. 사진 다원메닥스 제공

 


27일 다원메닥스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재발성 교모세포종(뇌종양의 일종) 환자를 대상으로 붕소중성자포획치료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일본에 이어 세계 2번째로 상용치료를 위한 임상시험이다. 다원메닥스는 2023년 두경부암에 대해 식약처 임상시험 승인 절차를 밟고 이어 피부흑종 간암 폐암 등 다른 난치성암의 임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중성자 치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단위까지 적용하는 치료법이다. 치료대안이 없는 말기암 환자에 적용 가능하고 이전의 방사선 치료(20여회)와 달리 1∼2회 치료로 부작용을 최소화해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그동안 중성자는 원자로에서만 만들 수 있었지만 가속기 기술의 발전으로 의료용 가속기에서도 중성자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다원메닥스는 병원 안에 설치가 가능하며 상용화에 최적화된 선형가속기 기반의 중성자 발생장치를 국내 최초로 제작했다.

유무영 다원메닥스 대표는 29일 "재발암이나 기존 수술법으로 접근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며 "내년 본격적으로 난치성 암치료 임상들을 진행해 암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생존율 5% 낮은 교모세포종에 희망 = 다원메닥스에 따르면 붕소중성자포획치료는 붕소의약품과 의료용 가속기에서 발생하는 중성자를 이용해 정상세포의 손상은 최소화하고 암세포만 선별해 사멸시키는 치료법이다.

치료원리상 붕소의약품이 흡수되는 세포단위까지 치료가 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암덩어리(고형암)의 치료만 가능한 기존 방사선치료에 비해 각 개별세포까지 작용해 침윤성 암, 미세암, 분산암도 치료가 가능하다.

2020년 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일본 연구그룹이 교모세포종이 재발한 환자 27명에 대한 붕소중성자포획치료 결과를 발표했다. 재발한 교모세포종은 현 과학 수준에서는 치료법이 제한적이어서 평균 생존기간이 6∼8개월인데 비해, 붕소중성자포획치료는 평균 생존기간이 18.7개월로 나타났다.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은 뇌신경계를 구성하는 신경교세포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2005년 교모세포종의 치료로 테모졸로마이드와 방사선을 동시에 사용해 치료하는 항암방사선병행요법의 임상적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교모세포종 환자의 평균 생존율은 7개월을 넘지 못했다.

항암방사선병행요법이 시행되고 평균 생존율이 약 11개월로 높아지면서 현재까지 교모세포종의 표준치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면역항암제 시대로 진입하면서 생존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다른 암종과 달리 교모세포종의 치료는 뇌의 구조적 특성으로 치료가 어려워 2005년 이후 현재까지 답보상태다.

특히 항암방사선병행요법을 한번 진행한 환자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재발할 경우 추가적인 방사선 치료가 제한적이다. 대안치료가 부족해 교모세포종은 5년 생존율이 5%에 머물 정도로 최악의 난치성 암으로 여겨졌다.

다행히 붕소중성자포획치료로 생존기간을 늘어난 점은 희망적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호전을 보인 대상환자들이 모두 항암방사선 병행요법을 받고 난 후 재발된 교모세포종 환자였다는 점이다.

◆암세포만 선별 사멸시키며 치료 = 붕소중성자포획치료 임상 진행을 살펴보면 환자는 우선 입원한 병원에서 치료를 위한 검사와 사전 치료계획을 수립하고 붕소중성자포획치료 의원으로 이동해 중성자 치료 1시간 전 붕소의약품을 정맥주사한다.

이때 주사된 붕소의약품은 작용기전상 암세포에 선별적으로 쌓이게 된다.

이후 환자는 치료실로 이동해 치료대에 누워 중성자빔이 나오는 포트에 환부를 대고 한시간 동안 중성자빔을 쐬게 된다. 중성자빔이 환부를 통과하면서 암세포에만 선별적으로 쌓인 붕소와 중성자만 암세포 내에서 높은 핵반응 에너지가 발생하고 그 에너지로 암세포를 사멸하게 만든다.

이때 발생하는 핵반응 에너지의 도달 범위가 세포단위로 매우 짧아 정상세포의 손상은 최소화한다. 환자는 치료 후 기본 검사를 받고 퇴원해 3개월 단위로 회복 경과를 지켜보게 된다.

◆붕소중성자포획치료 시스템 개발, 국내 의료기기 산업 모델 = 7년여 기간 동안 붕소중성자포획치료 시스템을 개발한 다원메닥스는 순수 국내 기술로 300억대의 첨단 대형의료기기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모색한다.

국내 의료기기의 해외 수입의존도가 62%에 이르고 자기공명영상 촬영장치(MRI)나 컴퓨터 단층촬영(CT), 양성자·중입자 치료기 등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대형의료기기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가운데 붕소중성자포획치료 시스템의 글로벌 시장 진출은 의미가 크다.

유 대표에 따르면 붕소중성자포획치료 시스템은 2016년 산업자원부 정책과제로 시작해 7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국내 기술로 개발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들을 선형가속기를 통해 빛의 속도로 가속시켜 중성자로 변환시키고 환자치료에 적합한 속도로 중성자를 감속시킨 후 체내에 들어간 붕소의약품과 반응하게 하는 것이 핵심기술이다.

이 시스템은 방사선 물리 IT 의료가 융합된 기술로서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선형가속기 타입으로 연구용이 아닌 상용화 목적으로 시스템을 개발 완성하고 임상시험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태동기에 있는 붕소중성자포획치료는 일본의 원형가속기 타입과 이번 국내 개발 선형가속기 타입으로 글로벌시장 선점을 위해 기술력을 경쟁하는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유 대표는 "붕소중성자포획치료 시스템 개발 과정은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첨단화와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민간분야에서 464억원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 새로운 기계의 임상시험 수행을 위해 별도 의원 설립이 필요했던 '중성자포획치료 의원'을 감사원 인천광역시 보건복지부의 적극행정을 통해 회사소속 의사로 하여금 개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 혁신의료기기 기업과 품목지정을 통해 새로운 평가기준과 방법을 사전에 신속히 마련했다. 여러 협력이 성공의 핵심동력이 됐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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