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차지호 카이스트 교수]
"이태원 국정조사, 진상규명 끝 아닌 시작점"
피해자를 '목소리 없는 사람들'로 만들어 정부가 참사 대하는 방식 문제
생존자·유가족 보호가 급선무인데 정부는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지 의문
기후변화로 재난 일상화 목전인데 현재 벌어진 재난에서도 교훈 못 얻어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가 끝났지만 진상이 규명됐다거나 재발방지책이 마련 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적은 듯하다. 첫 현장조사부터 따지면 고작 28일간 이뤄진 국정조사는 참사의 진상을 규명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정부가 이번 참사에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의문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국정조사 전문가 공청회에 참여했던 차지호 카이스트 교수가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국정조사는 시작점"이라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의사이자 재난학 전문가인 차 교수는 국정조사 내내 질문자 아닌 청취자 입장에 있어야 했던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보면서 "피해자들을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로 만들려 한다"고 지적했고, 응급대응 문제점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항상 새로운 얼굴로 다가오는 재난을 대비하려면 응급대응뿐 아니라 예방 중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국정조사 종료 다음 날인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차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국정조사 총평을 한다면.
(진상규명의) 종결점이라기보다는 시작점인 것 같다. 국정조사를 통해 어떤 진상이 규명됐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치나 국가가 사회적 참사나 사회적 고통을 대하는 방식의 문제점들이 더 노출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정치나 국가의 가장 급선무는 생존자, 유가족, 지역 커뮤니티 등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국정조사에서 나타난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든 가장 큰 의문은 과연 이들은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였다.
■정부의 어떤 태도를 말하나.
참사 이후 정부 대응이나 국정조사 진행과정을 보면 생존자나 유가족같은 피해자들을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로 만들려고 한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생존자나 유가족이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참여하지 질문자로 참여하지 않았는데 사실은 이 분들이 질문을 해야 할 사람들이다. 이분들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최초 대응자(first responder)'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생존자들, 지역상인들은 이번 사태가 생겼을 때 현장에 있었고 가장 먼저 사람들을 구조했다. 대응 과정에서 어떻게 잘못됐고, 어떻게 피해를 입었고 등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겪었다. 이런 분들이 사실은 저같은 외부 전문가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상처에 비유한다면 어떻게 상처가 났고, 어떻게 곪아가고, 왜 낫지 않고 악화되고 있는가를 직접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피해자들의 회복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이들의 살아있는 경험에서 모든 논의가 출발해야 한다.
만약 일본의 지진처럼 항상 유사한 재난이 반복되다면 관련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재난 매뉴얼을 더 세밀화하는 것으로 재난대응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겪는 참사는 같지 않다. 재난은 항상 새로운 얼굴로 찾아온다. 그렇다면 전문가들보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국정조사에서도, 참사 직후 정부에서도 유가족 및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점은 아주 큰 문제다.
■또 문제의식을 느낀 지점이 있다면.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았던 것 외에도 현장에 있던 실무자들에 대한 법적인 처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 실무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 이야기부터 해버리면 가장 큰 문제는 재발 방지 대책이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긴급 대응하면서 초기 문제점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니까 이들이 자신의 실수, 문제점,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스스로 얘기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법적인 책임' 운운하는 지금 상황에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 침묵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유가족, 생존자, 현장 실무자들은 모두 침묵시켜 놓고 현장에 없었던 저같은 사람을 불러서 공청회에서 말하도록 하는 게 사실 정확한 방법은 아니다.
■세월호 때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반복되는 재난이라면 굉장히 정교한 매뉴얼을 만들어 잘 지키는 게 재난 대응의 핵심이다. 만약 실무진들이 그 매뉴얼을 못 따라갔다면 그들을 처벌하거나 책임을 묻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계속 새로운 재난들이 온다면 이런 방식은 의미가 없고 결국은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개선시켜야 나가야 한다. 재난이 어떤 얼굴로 올지 예측하고, 발굴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려면 실무자들이 책임지는 게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전사회적 접근(whole society approach)라고 해서 사회 전체가 재난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그렇기 때문에 말단에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아니고, 전체 시스템에 대해 책임성 있는 사람들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것이 전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굉장히 중요한 동력이 된다.
■우리나라의 재난대응시스템은 다른 분야에 비해 후진적인 걸까.
코로나의 예를 들고 싶다. 한국이 코로나를 사회적 재난이 되지 않도록 잘 막았는데 정부에서만 막았을까? 온 국민이 참여해서 막아낸 거 아닌가. 재난학에선 이태원참사같은 것뿐 아니라 자연재해, 코로나 등을 모두 재난의 개념에 넣는다. 코로나 초기를 떠올려 보면 어떻게 이 상황을 막아낼지 많은 논의가 있었다. 대통령부터 국회까지 정치적 리더십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코로나라는 재난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 한국에 재빨리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세월호나 이태원 때는 왜 이런 대응이 안 됐을까.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참사가 났을 때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도 '사회적 재현'을 통해 공통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내 일상 속에서 발생한 일이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국가적으로 이 참사를 정의하고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재현이 되는데 만약 정부가 이 문제를 특정 불운한 사람들이 겪은 사고로 만들고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면 전사회적 대응이 불가능해진다. 그냥 불운한 사람들이 당한 사고이니 보상해주고, 치료 지원해주고 하면 된다는 식이 되고, 결국 예외적인 사고가 난 것인데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정부 대응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모두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듯이 재난도 마찬가지다. 다들 재난 관련해서는 이게 멀고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계속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기후 변화 때문이다.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나 기후 불안정성이 굉장히 커지면서 재난의 발생 빈도가 굉장히 높아지고, 재난이 일상화되는 순간이 멀지 않았는데 여기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기는커녕 지금 벌어진 재난에서도 무엇 하나 배우지 못하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국제사회에선 재난 대응과 관련해 이미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 즉 예방 쪽으로 방향을 잡은 지 오래 됐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주기적으로 미국 내에서 발생할 재난들에 대한 리스크 평가를 한다. 이미 발생한 재난 말고 다양한 재난 가능성들을 발굴해서 리스크 평가를 하고 그 리스크에 따라서 준비를 한다. 이렇게 하면 10년 안에 10번 일어날 재난이 한두 번으로 줄어든다.
이처럼 선진국의 재난 대응 시스템은 예방, 보호, 조기대응, 피해회복 등의 단계를 모두 갖추려고 하는데 한국은 초기 대응에만 집중한다. 얼마나 빨리 출동했느냐 이런 것만 관심을 가진다. 사후약방문식 대응이 될 수밖에 없다.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난이 발생하지 않게 줄이는 것이다. 코로나에 전사회적으로 대응했듯 다른 재난에 대해서도 그렇게 대응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선 상식이다.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해 보인다
정부 차원에서 재난관리 특별위원회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재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정부를 보호하고, 자기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법적인 책임이 있냐 없냐 식으로 가서는 법조계 논리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실제로 재난이나 참사가 되고 안 되고는 그 사회가 가진 시스템에 달려 있다. 세월호 때도, 이태원 때도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데에는 우리 사회의 재난 대응 시스템이 재난을 예방하거나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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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