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당 지도부·의원 잇단 회동 … "전대 참석하겠다"

박근혜, 2006년 전대 현장서 '무언의 신호'로 "판 뒤집었다"

전대에 뛰어든 윤 대통령도 '박근혜 효과' 낼 수 있을지 주목

나경원 전 의원의 전당대회 불출마를 이끌어낸 '윤심'이 이번에는 당심을 다독이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 지도부와 의원들을 잇따라 만났다. 전당대회장에 직접 가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친윤 당권'을 만들겠다는 윤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읽힌다. 2006년 7월 전당대회 결과를 뒤집었던 '박근혜의 추억'이 재소환되는 대목이다.

2006년 7월 한나라당은 새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열었다. 이듬해 대선 경선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새 대표를 친이(이명박), 친박(박근혜) 어느 쪽에서 차지할지 관심이 집중됐다. 친박은 강재섭 의원을, 친이는 이재오 의원을 밀었다. 전당대회 직전까지 조직력에서 앞서는 친이가 미는 이 의원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발언 경청하는 한동훈 법무부장관 |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법무부·공정위·법제처 등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윤 대통령 발언 경청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이변은 전당대회 현장에서 벌어졌다. 대표직에서 막 물러난 박근혜 전 대표가 무대 앞 귀빈석에 앉지 않고, 무대 맞은편 대구·경북 대의원 자리에 앉았다. 원형 실내체육관이었던만큼 현장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대부분 박 전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었다. 후보 8명이 차례로 연설에 나섰다. 다섯번째 순서인 이 의원이 연설을 하고 있는데 박 전 대표가 갑자기 일어나 기표소로 향했다. 장내의 이목은 연설하는 이 의원 대신 이동하는 박 전 대표에게 쏠렸다. 박 전 대표의 이동은 대의원들에게 '무언의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현장투표에서 '강재섭 지지'가 쏟아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강 의원이 역전에 성공했다. 당심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은 그만큼 막강했던 것이다.

윤 대통령도 '친윤 당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친윤을 총동원해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를 이끌어낸 다음날인 26일 여당 지도부를 대통령실로 불러 다독였다. 지도부가 전당대회 참석을 요청하자 "우리 당의 많은 당원이 모이는 자리이고, 좋은 축제니까 꼭 참석하겠다"고 답했다. '제2의 박근혜 효과'가 나타날지 주목되는 장면이다.

다만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2006년 7월 전당대회처럼 현장 대의원투표가 없다. 사전에 모바일로 투표를 마치고 이날은 결과만 발표하게 된다. 윤 대통령이 현장표심에 영향을 미칠 기회는 없는 셈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전당대회 룰 개정 △나경원·권성동 불출마 △친윤의 김기현 지원 △김장(김기현-장제원)연대 등을 통해 '친윤 당권'에 대한 의지를 노골적으로 피력하면서 '윤심'이 당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한 관심사다.

윤 대통령은 26일 오후에는 여당 초선의원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이날 만찬에는 비주류 의원까지 포함됐다. 윤 대통령은 이후에도 의원들과 소규모 만남을 계속할 방침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이 의원들에게 '원팀'을 강조하면서 '친윤 당권'을 은연 중 요구하는 것으로 읽힌다.

다만 '윤심'이 과거 '박근혜 효과' 수준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참패가 예고되던 2004년과 2012년 총선에서 '깜짝 성적'을 이끌어내면서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다. 당원들로선 박 대통령에 대한 전폭적 신뢰와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윤 대통령은 처지가 다르다. 2021년 7월말에야 입당했고, 대선을 이겼지만 당원들과의 접점은 많지 않다.

다만 윤석열정권 성공을 바라는 당심이 '윤심'을 좇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박근혜 탄핵으로 망한 보수정권이 이번에는 성공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한다"는 절박감이 당심 저변에서 엿보인다. '윤심'을 업은 김기현 의원이 단숨에 선두권으로 올라온 것도 이같은 당심 덕분으로 읽힌다.

'윤심'에 대한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직 대통령이 전례없이 노골적으로 여당 전당대회에 개입하는 장면이 잇따르자 이에 반발하는 기류도 커지고 있는 것. 총선 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윤심'의 영향력에 의문점을 남긴다. '윤심'이 만든 '친윤 당권'이 총선 승리를 이끌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총선 승리가 절박한 당심이 '플랜 B'(안철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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