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미국 회계감독당국이 강력한 회계감사 조치에 나섰다. 기업의 회계부정 발생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2003년 현재의 회계감사규정이 마련된 이후 회계법인이 요구하는 확인절차에 가장 큰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현행 규정은 소극적 확인요청에 의존한다. 회계법인은 기업이 제시한 금액이 틀렸을 경우에 금융기관에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지난달 20일 미국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는 기업의 외부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이 기업에 대한 외부증거를 입수하고 검증하는 방법을 더욱 강화하는 제도 개선안을 제시했다.

2010년 PCAOB는 외부증거 확인 관련 규정들의 변경을 제안했지만 기업들이 반발하면서 실제 적용에 실패했다. 당시 제안에는 현금성자산(만기 3개월 이하 투자자산) 규모의 확인 요구사항 등이 포함돼 있었지만 이번 PCAOB의 개선안은 그때보다 강도가 훨씬 높아졌다. 기업의 현금과 현금성자산 규모를 직접 확인하게 할 예정이다.

미국 회계감독당국, 강력한 기업 회계감사 조치 나서

제도 개선안은 회계법인이 확인을 위해 항목을 선택하거나 요청서를 발송하는 등의 업무에서 기업 내부 감사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PCAOB는 내부 감사인이 확인 요청을 사전에 조작하지 못하게 하거나, 확인 요청에 대한 답변도 사후에 조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통신수단의 기술적 변화들이 급격히 일어나는 상황에서 '사기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PCAOB가 확인 요청 절차를 강화하려는 가장 큰 이유다. PCAOB는 감사인들이 '잠재적 사기' 관련 위험신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회계감독당국이 기업 회계감사를 강화하려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 금융당국은 회계감사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10월 '중소기업 회계부담 합리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자산 1000억원 미만 상장사에 대해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면제를 추진했다. 최근 국회는 관련 법률개정안까지 통과시켰다. 대형 비상장사 범위를 축소해 상장회사에 준하는 회계규정을 적용받았던 기업들이 제외됐다.

금융당국은 '회계개혁 평가·개선 추진단'을 통해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의 적용 완화를 논의하고 있어서 회계업계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상장기업이 외부감사인을 6년간 자유롭게 선택한 뒤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직접 지정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기업의 자유 선임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도입 취지와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

최근 몇년 간 영국과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대기업의 회계부정 이슈가 이어졌고 회계법인과 기업의 유착 문제가 대두됐다. 감사의 질을 결정하는 2가지 요소는 감사인의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전문성이 뛰어나도 감사결과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감사인과 기업의 유착 고리를 끊고 회계감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제도다. 향후 이 제도의 성과가 입증된다면 전세계 회계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회계개혁의 뼈대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회계 데이터가 정확해야 거시경제 통계도 정확해진다. 경제학적 측면과 기업관리 측면, 통계관리 측면에서 회계투명성이 중요한 이유다.

회계부정 발생하면 기업 구조조정 적기 놓쳐

경제가 어려워지면 수많은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회계부정이 발생하면 기업 구조조정 적기를 놓치게 된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이 대표적 사례다. 회계투명성이 올라가면 우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없어지게 된다. 자금 조달도 쉬워져 금융비용이 줄어들면서 기업들이 더 많은 이익을 누리게 된다.

기업들이 회계개혁 방향에 동의하지만 제도변화를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감사인의 잦은 교체로 인한 업무부담, 회계·감사비용의 증가 등이 이유다. 기업과 회계법인들이 서로 양보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회계법인들은 회계투명성이 높아졌을 때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박진범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