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 신년부터 파격 행보 … 도정철학 공유 긍정적

지난 26일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4층 대강당에서 열린 실·국 업무보고 분위기는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과거 같으면 실·국장들이 수십 쪽에 달하는 업무보고서를 장황하게 읽기 바빴을 자리다. 하지만 이날 업무보고에서는 과거에는 보기 힘든 장면들이 연출됐다.

30일 경북도에 따르면 이날 업무보고는 농축산유통국 환경산림자원국 해양수산국 농업기술원 문화관광체육국 건설도시국 통합신공항추진본부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그런데 일부 국이 국장이 아닌 공무원 초년생들을 잇따라 보고자로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조순정 경북도 문화유산과 주무관이 지난 26일 국장 대신 2023년도 문화관광체육국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경북도청 제공


문화관광체육국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김상철 국장 대신 문화유산과 소속 조순정 주무관이 등장했다. 조 주무관은 2019년 9급 공채로 들어온 8급 직원이다. 이른바 경북도의 대표 MZ세대다. 조 주무관이 보고자로 낙점된 것은 그가 정책의 주요 수요자로 성장기에 디지털문화를 향유했고 이에 익숙하면서도 탈이념화 탈정치화된 MZ세대라는 점이었다. MZ세대의 시각에서 도정을 보고 추진하자는 취지다.

조 주무관은 "2019년 9급 공채시험에 합격해 2020년 1월 입사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보고를 시작했다. 이어진 보고에서 그는 자신의 청년기를 보고에 녹여냈다. 고등학교부터 고향 안동을 떠나 구미에서 유학하고 서울의 유명대학에서 공부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자신과 같은 청년들의 입장에서 보고를 이어갔다.

조 주무관은 "올해 사업꼭지를 나열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봤다"며 "자잘한 일회성 또는 이벤트성 사업 보다는 산업화와 일자리창출에 초점을 맞춰 보고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준비를 하다 십여년 만에 고향인 안동에 와보니 기반이 잘 갖춰지고 돈과 인재가 풍부한 서울 등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소멸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며 "저와 같은 청년이 지방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책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을 보고에도 담았다"고 말했다.

8분에 걸친 업무보고가 끝나자 이철우 도지사가 질문을 던졌다. 수학교사 출신답게 수치에 밝은 이 지사는 조 주무관에게 경북도의 지난해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수를 물었고 조 주무관은 정확하게 답변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수를 묻는 후속 질문에는 말문이 막혔지만 배석한 관광마케팅과장에게 답변을 부탁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문화체육관광국에 이어 진행된 건설도시국 보고자는 토목직 6급인 김지찬 주무관이었다. 김 주무관은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차안에서 목 아프도록 읽고 또 읽으며 연습했다"며 "지방시대와 공항시대 개막에 맞춰 차질 없이 광역철도를 만들겠다는 내용을 핵심 업무보고에 담았다"고 말했다.

전날인 25일에는 경제산업국도 8급인 손승현 주무관이 국장을 대신해 올해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손 주무관은 2019년 10월 경북도 공채 출신이다.

발표자로 나선 주무관들은 저마다의 특색 있는 발표로 '혹시나 실수하면 어쩌나' 하고 가슴 졸이며 보고 있던 실·국장들의 우려를 날려 버리고 MZ세대만의 신선한 시각으로 간단명료하게 업무보고를 진행해 호평을 받았다.

이날 업무보고를 주재한 이철우 경북지사는 "누구나 하는 일, 누구나 하는 생각은 과감히 버리고 누구도 하지 않은 일, 누구도 해보지 못한 생각으로,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과감히 갈 수 있는 공직자가 되어야 한다"며 "6급 이하 공무원에 대한 계급제 완화와 같은 혁신적인 제도개선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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