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가천대 겸임교수, 경제저널리즘 박사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은행들은 연거푸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 신한·KB국민·우리·하나 등 4대 금융지주사의 지난해 순이익 합계는 약 15조8500억원. 전년 대비 9% 증가했다. 금융지주사의 순이익 경신은 주력 계열사인 은행의 이자수익 덕분이다.

수수료 감면과 증시 침체에 따른 유가증권 손실로 비이자이익은 감소한 반면 이자수익은 40조원에 이르렀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급속도로 인상하는 사이 대출금리를 예금금리보다 빠르게 큰 폭으로 올리며 벌린 예대금리차로 이자장사를 한 결과다.

서민층이 불어난 이자 때문에 한숨을 쉬는 사이 은행들은 잔치를 벌였다.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기본급의 300~400%씩 지급했다. 고위급 임원 성과급은 수억~수십억원에 이르렀다. 어떤 은행은 설 직전 입사한 신입행원에게도 '귀성비' 명목의 설 상여금을 지급했다.

희망퇴직자에게도 역대급 보상을 제공했다. 법정퇴직금 외에 특별퇴직금으로 24~36개월치 월평균 급여에 재취업지원금 자녀학자금 여행상품권 건강검진권 등을 얹었다. 특별퇴직금만 해도 얼추 3억~4억원이다.

그 덕분에 지난해 말부터 올 초 4대 은행과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희망퇴직자 2200여명이 법정·특별 퇴직금을 합쳐 6억~7억원씩 받아갔다. 이자장사로 금고가 빵빵해진 은행들이 희망퇴직을 구조조정이 아닌, 직원들에게 목돈을 챙겨주는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역대급 실적에 그들만의 성과급 잔치

은행원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고액 연봉 직업군에 속한다. 5대 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2021년 1억원을 돌파했다. 그해 상위 10%의 평균 연봉은 2억원에 육박했다. 받는 만큼 고객, 금융소비자를 응대하면 좋으련만 은행 노사의 최근 행태는 사회 통념 및 상식과 거리가 있다.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리두기 강화 조치에 따라 오전 9시~오후 4시인 영업시간을 9시30분~3시30분으로 1시간 단축하기로 합의해 2021년 7월부터 시행했다. 지난해 4월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며 식당·백화점·영화관 등 대부분 서비스업종의 영업시간이 정상화됐다. 하지만 은행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올 1월 30일에야 환원했다. 금융노조가 오전 30분 단축영업을 유지하자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금융노조는 빠듯한 점심시간을 이용해 은행 일을 봐야 하는 직장인들 처지는 아랑곳없이 점심시간 영업중단까지 추진했다.

은행들이 금리상승기를 틈타 이자수익을 극대화하고, 그들만의 성과급 잔치를 벌이면서 고객 서비스는 소홀히 하자 곳곳에서 눈총을 보내고 압박했다. 금융당국은 예금·대출 금리의 과도한 인상과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에 제동을 걸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은행의 공익적 역할을 강조했다.

정치권은 막대한 이익을 낸 정유사에 더해 은행에도 초과이익에 50%의 세금을 물리자는 '횡재세' 법안을 발의했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7개 금융지주사에 주주환원 정책을 마련하라고 공개서한을 보냈다. 횡재세는 기업이 자체 노력보다 외부 요인이나 독점적 지위를 통해 정상이득 범위를 넘어선 초과이득이 발생했을 때 한시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우크라이나전쟁 여파로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에너지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이 지난해 도입했다.

행동주의 펀드는 자금난을 겪는 기업을 헐값에 인수해 비싸게 팔아 이익을 취하던 과거 '기업 사냥꾼' 이미지를 벗고 기업의 실적 개선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에서 보듯 홀대받는 소액주주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상장기업에 '뜻밖의 구원자(unlikely saviour)' 평가도 받는다.

관치 벗고 '금리인하요구권' 솔선하라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는지 은행권이 서둘러 자사주를 소각하고, 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총주주환원율)을 높이겠다고 의결했다. 취약계층에 대한 난방비 지원과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복구자금 기부 등 사회공헌활동에도 나섰다.

늘 이런 식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관치(官治)에 길들여 있다. 아니 '관치에 중독'되어 있다. 스스로 먼저 문제를 찾아 해결하지 않고, 금융당국 눈치를 보며 지침에 따르거나 시늉을 내다 만다.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혁신이 더딘 배경이다.

은행은 고객이 맡긴 예금을 필요로 하는 다른 고객에게 빌려주고 돈값을 받는 조직이다. 따라서 은행이 지속가능하려면 고객중시 경영이 우선이다.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 한푼이 아쉬운 금융소비자들로선 예금·대출금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월급이 오르거나 승진해 신용이 높아진 대출 고객에게 법률이 정한 '금리인하요구권'이 있다는 점을 보다 친절히 널리 알리고 확실하게 실행하자. 제발 외부에서 닦달하고 강제하기 전에 스스로 행동하라.

양재찬 가천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