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요즘 유럽이나 미국 신문 방송에는 기후변화에 관련된 기사가 지면이나 화면을 도배합니다. 허리케인과 홍수, 한발과 산불, 빙하 붕괴와 바다수위 상승, 병충해를 비롯한 동식물의 이동 등에 관한 이야기와 이로 인해 일어날 미래의 재난을 예측하는 기사들입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눈길을 끄는 미국 부동산 이야기 하나가 나왔습니다. 호글랜드 내외는 둘 다 은퇴한 60대 의사 부부입니다. 그들은 은퇴하면 경관이 좋은 바닷가에서 여생을 보낼 요량으로 10년 전 플로리다 해변에 집 한채,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부근 해변에 집 한채를 각각 사들여 반년씩 번갈아 가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2년 전 돌연 이 집들을 처분했습니다.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었습니다. 북 캘리포니아는 가뭄과 산불 피해가 급속히 확산되고, 플로리다는 걸핏하면 허리케인이 주택가를 휩쓰는 걸 목격하고 그런 곳에서 은퇴 후 몇 십년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게 영 불안했던 겁니다. 쾌적한 바닷가에 사는 게 꿈인 이들 부부는 2년 동안 기온상승, 깨끗한 담수, 해수면 상승 등을 고려한 은퇴 정착지를 찾아다니다 결국 노스캘로라이나주의 해안가에 정착할 계획을 세웠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호글랜드 부부의 고민이 그지없이 호사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땅이 넓고 우리보다 훨씬 부유한 미국인들은 걱정의 차원이 다른가 봅니다. 미국 부동산업계, 특히 동부와 서부의 해변지역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60대 은퇴 연령에 가까운 미국인들이 노후생활의 거처를 정하는데 기후변화가 심각한 고려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은퇴자 거처 결정 요인이 된 기후

경제적 여유가 있는 미국 은퇴자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곳은 온화한 겨울과 아름다운 해변 경관이 매력적인 캘리포니아주와 플로리다주입니다. 특히 플로리다주는 겨울이 매서운 뉴욕 등 미국 동부의 대도시 부유한 사람들이 겨울 피한지로 각광을 받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제 부유한 은퇴자들이 예전처럼 경관도 마음에 두지만 허리케인 돌풍 폭우 등 기상조건에 중점을 두고 부동산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렇게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안전한 은퇴 정착지를 고르는 사람의 숫자는 아직 적지만 눈에 띄게 증가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당연해 보입니다. 미국의 재난 사망통계를 보면 산불 허리케인 홍수에 60대 이상 고령자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노인들이 젊은이들에 비해 폭염에 더 취약합니다,

한국보다는 덜하지만 미국사회도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있습다. 기후변화가 더욱 악화하고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부동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후 취약지 부동산 시세가 떨어지는 추세도 뚜렷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기후만큼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약 100년 전 미국 예일대학의 기후학자 엘스워스 헌팅턴은 인간의 육체 및 정신활동에 가장 최적의 기후조건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공장에 근무하는 65명의 젊은 여성 노동자의 작업효율성과 육군사관학교 생도 240명의 수학성적을 기후와 연관시켜 분석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헌팅턴 교수는 평균기온 18℃, 상대 습도 60%, 그리고 일교차와 연교차가 큰 기후가 인간 활동에 가장 이상적이라고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기후는 문명과 도시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의 기상은 변동이 심해도, 기후는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며 되풀이되었고 인간은 이에 적응해왔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그 패턴이 깨지면서 기후변화가 인류 최대의 현안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기술문명이 극도로 인간의 삶을 편하게 바꾸고 있지만, 기후는 계속 악화될 것만 같으니 걱정입니다. 헌팅턴 교수가 제시한 이상적인 기후를 찾는 것은 20세기에서나 논의되던 헛된 꿈일지 모릅니다.

기후변화 적응 패턴 곧 세계화될 것

부유한 미국 은퇴자들의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주거지 선택 추세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그들은 아마 미국 인구의 1%도 안되는 소수일 겁니다. 기후변화에서 가장 피해를 덜 받는 계층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기후변화 적응 패턴은 미국 사회 부동산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기후적응 행동양식에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기후변화 파장이 긍정적일 수는 없습니다. 가장 안전하게 살던 사람들이 불안을 느껴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파장은 세계 전체와 연결돼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한국은 어떤가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여유를 찾기 위해 강원도 제주도 등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기후변화를 우려한 부동산 거래의 변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으니 다행입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한국은 참 안전한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김수종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