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식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제104주년 3.1절 기념사와 함께 3월 6일 일제 강제동원 배상문제를 둘러싼 정부 발표안과 미국 경제정책에 대한 대응을 놓고 논란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포스코 한국전력 한국철도공사 등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시 혜택을 받은 한국기업들이 배상금을 대납하는 소위 제3자 변제방식을 결정했다. 또한 세계무역기구(WTO)의 국제제소도 취하했다.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심지어 우리 정부에게 추후 구상권(求償權)까지 포기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일본정부를 등에 업은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들의 사과도 없다.

일본이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라면 진솔한 사과와 책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지난해 7월 말 전경련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78.7%가 "한일 관계에서 과거사 해결이 선행되어야만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윤석열정부가 일본정부와 관계에서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일방통행을 한 배후에는 미국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동아시아안보전략 차원에서 한일 간 역사갈등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직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을 막고 미국 자신이 전세계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한·미·일 동맹체제가 필요할 뿐이다.

윤 대통령 3.1절 기념사가 불러온 파장

한미 군사훈련은 한·미·일 3국 연합군사훈련이 되었고 연합훈련에 있어 일본해가 표기된 지도가 사용되는 등 외교관계에 있어서 대등한 입장이 아니라 한국은 일본의 지위 체제 아래에 편입되어 버린 형국이 되었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의 경제안보에 우리나라 경제가 하위 개념으로 종속되어 버렸다.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대표적이다.

바이든정부는 반도체지원법 투자에 대해 "국가안보와 경쟁력에 반도체 공급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 반도체 산업을 재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반도체지원법의 심각한 독소 조항에 있다. 반도체 생산시설 접근을 허용하고, 재무계획서 제출, 초과이익 환수, 자사주 매입배당 금지, 10년간 중국 투자 금지를 다루고 있다.

삼성의 반도체 기술과 공정을 미국에 공개하고 초과이익은 미국에 토해내야 하며, 중국의 반도체 생산시설을 폐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이며, 동맹국에 대한 폭거다.

미국은 유럽과 아태지역 동맹 및 파트너 간 기술 무역 안보 문제에 대한 연결을 강화하고 민주주의 국가와의 협력을 심화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동맹국의 희생을 강요하고 미국의 패권 강화와 자국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일련의 벌어진 사안들에서 윤석열정부가 보여준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의 외교역량과 국가이익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국민들로 하여금 외교적 허탈감과 자괴감을 갖게 한다.

외교적 허탈감 불러오는 결정

3월 말, 미국 중심의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진행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지 되물어 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