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과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의 유동성 위기로 야기된 글로벌 금융위기 조짐이 양국의 재빠른 대처로 다소 진정되고 있다. 하지만 미 중소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FRB)의 예금 중 절반이 빠져나가는 등 위기가 좀처럼 진화되지 않고 있고 세계 9대 투자은행인 CS의 '본드런'(연쇄채권매도) 경고가 나오는 등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여야는 현재 5000만원으로 되어 있는 국내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 정도로 상향하자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여야, 22년째 그대로인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 공감

이번 사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제2의 리먼 사태로까지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아직 우세하다. SVB의 경우 자산 중 채권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데다 스타트업과 주로 거래했다는 특수성을 지닌 만큼 유사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SVB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 전세계 스타트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서서히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업계에선 이번 사태로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투자 자체가 위축될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국내 벤처캐피탈과 스타트업도 타격을 입고 금융 부문까지 연쇄적으로 부실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또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Fed)의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한껏 높아진 상황이고 금융사들의 위험회피 경향으로 대출 축소 등 당분간 시장 경색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는 현재 잿빛투성이다. 수출 부진으로 무역·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1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빚과 제2금융권에 집중된 116조원(작년 말 기준)이나 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위험이 도처에 깔려있다. 이런 판에 대외 충격까지 가세할 경우 진짜 위기가 현실이 될 수 있다.

국내 은행들은 SVB 등에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없어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만큼 예금을 날릴지 모른다는 예금주들의 걱정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특히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저축은행·신협·새마을금고 예금주들의 근심이 무척 크다.

SVB는 '뱅크런'으로 위기설이 퍼진지 불과 36시간 만에 파산했다. 과거에는 예금을 찾으려면 은행에 가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빠르게 계좌이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사는 유가증권 자산 비중이 낮고 현금 흐름도 양호하지만 인터넷뱅킹 이용 비중이 78%에 달하고, 지난해 인터넷뱅킹을 이용한 하루 평균 자금이체 규모가 75조원을 넘어 유사시 대량인출 사태가 전개될 경우, 삽시간에 도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여야는 예금자보호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특히 민주당은 중대한 금융경제 위기 등 예금자를 보호해야 할 긴박한 필요가 있는 경우 예금 전액을 보호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에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예금자보호한도는 2001년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대된 뒤 22년째 그대로다. 그 사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배가량 늘어났다. 이에 따라 한국의 은행업권 기준 1인당 GDP 대비 예금자 보호한도 비율은 1.3배로 미국의 3.7배, 영국 2.5배, 일본 2.2배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은행 건전성 확보 등 선제적 금융감독 매진 필요

하지만 예금자보호 한도를 확대하면 금융기관의 건전성 준수 의지가 약해지는 등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가 커질 수 있다. 또한 금융사가 예금보험공사에 내야 할 보험료가 높아져 대출금리를 올리거나 예금금리를 낮추는 방법으로 그 부담이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부작용도 피할 수 없다. 이를 고려, 금융업종별로 구분해 한도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보호한도 확대가 금융위기를 막는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은행의 건전성 확보는 물론이고 고금리로 어려움에 직면한 기업들이 자금경색을 겪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특히 부동산 PF와 가계대출 부실이 금융시스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 금융감독에 매진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는 만큼 급격한 자본유출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하겠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