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금융위기는 여러 요인들이 얽히고설킨 복합적 원인에 따른 결과이지만 그 핵심에는 항상 과도한 신용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찰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는 1636년 네덜란드 튤립버블 이래 1720년 영국 남해회사 버블, 1920년대 미국 대공황, 1980년대 멕시코 위기,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등 '10대 금융버블'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적 특징은 빠른 성장, 신용의 팽창, 투기적 투자, 과열, 신용위험의 노출, 붕괴 등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보여준다.

2008년 미국 월가발 금융위기 상황은 전형적인 금융 붕괴의 패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IMF 외환위기에 이어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등 위기가 잇따랐다. 이들 위기 역시 신용 팽창 이후 부동산과 주식시장에서 버블이 생성되었고 결국은 붕괴로 이어지는 패턴을 반복했다. 지난 40여년의 금융위기를 돌이켜보면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긴축적으로 전환된 뒤에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SVB 파산 '디지털 뱅크런' 대응과 '안전자산'에 대한 과제 남겨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과도한 금융 팽창과 금융기조의 긴축적 전환도 이 패턴을 피해가지 못했다. 부실한 기업 가계대출, 외환부족 디폴트 같은 과거 위기 유형과 다르게 '무위험 자산'으로 평가되는 미국 국채가 금리인상기에 가격이 떨어지면서 '위험 자산'이 됐다. 결국 금융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스위스에서 그것도 은행에서 문제가 터졌다. 크레디트스위스(CS)는 은행업의 본질적 경쟁력 상실이, 실리콘밸리뱅크(SVB)는 10년 이상 장기국채와 30년 모기지 채권(MBS)에 투자한 대차대조표의 듀레이션 리스크를 헤지하지 못한 게 원인이다.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심각한 경제재앙을 동반하는데 SVB 및 미국 지방은행들의 뱅크런과 CS 사태는 그 규모와 파장으로 봐서 경제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비교적 빠르게 진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대형 금융회사의 뱅크런 사태는 주식시장이나 파생금융상품의 폭락사태보다 그 파괴력이 훨씬 크고 전염성도 더 강하다. 금융위기의 심각성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어떤 정책을 펴고 얼마나 신속히 대응하느냐에 달렸는데 미국과 스위스 정부 및 금융당국은 뱅크런 은행의 신속한 폐쇄조치와 인수 결정, 예금자보호 확대 등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위기대응 매뉴얼을 선보였다. '휴대폰(디지털) 뱅크런'으로 SVB의 예금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도 초유의 사태였지만 연준과 재무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비상회의를 통해 은행기간펀딩프로그램(BTFP)과 재할인 창구를 열어 새로운 유동성을 제공하는 등 위기진화도 빨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도입한 다양한 금융위기 대응정책과 세계 주요 국가들간의 정책 공조, 2020년 팬데믹 대응 경험 등이 축적되면서 최종대부자로서 중앙은행의 역할과 정책 도구들이 진화한 덕분이다. UBS의 CS 인수 이후 미국과 스위스 정부 및 중앙은행 간 공조를 통해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일본 등 6개국 긴급 달러통화스왑라인의 재개나 '납세자들의 돈으로 은행을 구제한다'(2008년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 TARP)는 모럴 해저드를 피해가기 위한 JP모건 등 대형은행을 동원한 퍼스트리퍼블릭뱅크(FRC) 등 중소은행의 공동구제 아이디어 등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처 능력이 커진 것은 평가할 만하다.

다만 22일(현지시간) 연준 FOMC를 통해 파월 의장이 0.25%p 인상과 결정문에 '지속적 인상'(ongoing increases)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며 은행파산 사태에 따른 긴축적 시장상황을 고려한 기조변화를 시사한 반면 옐런 재무장관은 상원 세출위원회 금융소위 청문회에 출석, 공화당 소속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모든 예금을 보호하는 '포괄적 보험(blanket insurance)'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등 엇박자를 내 진정되던 시장을 다시 흔들어 놓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디지털 시대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효율적인 사전 예방과 점검체계 갖춰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발 금융경색이 최대 위협 요인이 되고 있는 우리의 문제로 보면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거시경제를 운용하는 기획재정부의 대처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디지털 경제의 확산으로 금융위기의 전파도 광속으로 빨라졌다. 철저한 사전 예방과 점검 체계가 필요하다. 새로운 위기 양상에 대응하는 처방도 스마트하게 진화해야 한다.

안찬수 오피니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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