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규정으로 재발 막고, 피해자 회복 도와야"

"가해 학생에게 졸업 후 더 불이익을 준다고 피해학생이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변호사는 '정순신 아들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진 이후 교육당국이 추진하는 대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반문했다. 입시 불이익 확대 등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는 오히려 사건을 더 분쟁화해 피해자의 고통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여론에 밀려 성급하게 대책을 내놓기보다 피해 학생의 회복과 가해 학생에 대해 사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선정한 '국내 1호 학교폭력 전문변호사'다. 지난 21일 노 변호사로부터 학폭 현황과 대책 등에 대해 들어봤다.

■드라마 '더 글로리'와 '정순신 아들 사건'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학교폭력 상황은 어떤가

코로나19 초기 일시적으로 줄었던 적이 있지만 코로나 기간에도 학폭 사건 상담 건수는 하루 평균 3~5건 꾸준히 있었다. 다만 1~3월은 방학 기간이고 새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이어서 학폭 상담도 줄기 마련인데 올해는 학기 중과 비슷하다. 학폭에 더 민감해지면서 신고를 하거나 공론화하는 일이 늘고 있는 것 같다.

■학폭 양상이 물리적 폭력에서 언어폭력으로 바뀌고 있다는데

교육부에서 매년 실시하는 실태조사를 보면 학폭 유형 1위가 언어폭력이다. 2위가 정서적인 폭력과 심리적 공격 등을 포괄하는 따돌림이고 신체폭행은 3위다. 언어폭력과 따돌림이 70% 가량을 차지한다. 4위 사이버 폭력까지 고려하면 학폭의 대부분이 비물리적 폭력인 셈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신체폭력 대신 증거가 잘 남지 않는 언어폭력이나 따돌림 등으로 교묘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도 언어폭력을 행사했는데 유사한 사례가 많나

언어폭력 사례는 많지만 바로 정학처분이 나오는 것은 흔치 않다. 그래서 판결문을 봤더니 언어폭력이 장기간 지속됐고, 수위도 매우 높았다. 요즘 아이들이 입이 거칠다고 하지만 정 변호사의 아들은 또래 학생들이 보기에도 '이건 아니다' 할 정도로 언어폭력이 심했다.

■정 변호사처럼 '끝장 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많이 있나

종종 있는 일이다. 가해자가 처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으로 가면 피해자는 더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행정소송법에는 소송에 이해관계가 있거나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3자 소송참가' 제도가 있다. 가해자가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직접적인 당사자는 처분을 내린 학교나 교육지원청이지만 그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는 피해자도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행정심판이나 소송이 제기돼도 피해자에게 알리는 게 의무화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피해 학생은 모른 채로 소송이 진행돼 끝난 이후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집행정지 신청은 신속하게 진행돼 피해 학생이 모르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부가 학생부에 학폭 기록 보존기간을 연장한다든가, 수능 전형에 반영 비중을 높이는 식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솔직히 회의적이다. 피해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가해 학생의 사과와 재발 방지 보장, 그리고 학폭이 발생하기 전처럼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다. 교육부가 검토하는 대책은 학폭 가해자에게 졸업 후 불이익을 더 주겠다는 것인데 피해 학생이 학교생활에 복귀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겠나. 게다가 학폭을 수시 뿐 아니라 정시에도 반영하면 사실상 대학입시가 어려워져 더 분쟁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학 입시가 막히는데 '무조건 막고 보자'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 않겠나. 사과는 뒷전이 되고 피해 학생의 고통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성인 범죄 처벌에 집행유예가 있는 것처럼 학폭에도 예외규정을 뒀으면 한다. 학폭을 저지르면 일단 학생부에 기재하되 일정 기간 동안 다시 폭력을 저지르지 않고 피해학생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면 기록을 삭제해 입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가해학생을 사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피해학생의 회복에도 효과를 볼 수 있지 않겠나.

선생님이나 전문가가 참여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소통과 대화를 통해 학폭 이전 상태나 일상생활로 돌아가도록 노력하는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피해 학생들이 모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할 것 같지만 사실 가장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과다. 그런데 가해자가 사과하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모르거나 서툴러서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관계회복 프로그램으로 잘 해결된 사례들도 많다.

관계회복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려면 교육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 선생님들은 전문가가 아니고 업무가 늘어나다보니 관계회복 프로그램에 대한 의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청에서 전문가를 많이 양성하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한다면 학교 폭력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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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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