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해소 시작도 안돼 … "유가족 지원 센터·특별법 만들어야"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50일이 지났다. 연말연초에 국회 이태원참사 국정조사가 진행됐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탄핵 소추됐다. 하지만 참사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도 목놓아 울지 못하고 있다. 트라우마 해소는커녕 분노 우울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 참사의 충격파는 유가족 등의 몸이 기억하고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남긴다. 그 후유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사회의 장기간에 걸친 위로와 지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 특히 행안부 등 정부기관과 서울시 등은 위로와 지지를 통해 트라우마를 풀기보다는 참사를 덮는 데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람을 뜻하지 않게 느닷없이 영원히 떠나보낸 경우 그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나려면 공감 위로 지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참사 후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유가족 등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에게 참사 이후 마음의 궤적을 물었다.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유가족의 일상회복을 위한 지지 방안을 물었다.

25일 오후 서울시청앞 10.29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평화나무합창단이 추모 합창 중. 사진 이의종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은 아직 자녀 가족과 이별하지 못하고 분노 우울에 고통받고 있다. "대통령은 만나주지도 않고 정부 경찰 소방당국으로부터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태원참사 발생 150일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아직 트라우마 해소 첫 단계도 시작하지 못했다며 사회적 지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25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 설치된 10.29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사진 이의종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학 교수(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장)는 27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는 매우 큰 충격이고 큰 아픔으로 여전히 남아있다"며 "트라우마의 치유와 애도 과정의 출발이 거의 되지 않은 상태일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10.29참사 이후 유족들이 원하는 △유족 치유공간 마련 △유족 애도 활동 지원 △진상규명 법 제정 △대통령의 공식사과 등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히려 유가족 등 피해자들에 향한 2차 가해를 방치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음으로써 유가족들의 분노와 억울함은 계속 누적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만약 이런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유가족 등 피해자들은 평생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힘겹게 살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김 교수는 "유가족 등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우선 유가족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지원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의 요구에 기초한 심리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유가족과 신뢰 쌓아야 심리지원 가능 = 정부는 이태원 사고 직후부터 공공-민간 합동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해 유가족과 부상자 그리고 그 가족들, 대응인력, 목격자, 일반시민에게 심리지원을 진행했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과 인력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정부분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된다.

국내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한 시민이 300만명이나 돼 평소에도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인력이 부족해 참사 관련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제공하기 버거운 상태이다.(내일신문 2022년 6월 24일자, '정신질환자 300만 시대' 기사 참조) 이런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 등 피해자 지원사업이 더해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3월 10일 기준 유가족 293명, 부상자 및 가족 등 537명 총 830명에게 심리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유가족 등 피해자들이 전국적으로 거주하는 탓에 서울 거주자는 서울시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가 251명을 대상으로 심리지원을 맡고 있다. 경기·인천지역 국가트마우마센터가 479명에게 심리지원을, 기타 지역 거주자 100명에게는 권역트라우마센터가 심리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복지부는 현재 심리지원 대상자 가운데 고위험군으로 6명을 관리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가족 등 피해자들 중에는 심리지원을 거부하는 사례들이 다수 있고 적절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심리지원은 당사자가 참여 의사가 없거나 부족하면 제대로 제공할 수 없을 뿐아니라 효과를 볼 수 없다. 당국은 심리지원을 원할 경우 언제든지 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계속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상현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정신건강사회복지사)은 27일 "유가족들이 왜 심리지원을 거부할까 들여다봐야 한다. 10.29 참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 없는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심리지원을 정부의 사업으로 인식해 본인들은 지금 받고 싶지 않은 것"이라며 "유가족들과 신뢰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심리지원이 이뤄질 수 없다. 개별적인 접근보다 유가족 등 피해자가 모여 있는 공간으로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 심리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 입장에서 '오라'고만 하면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독립적 조사 기구로 구조적 원인 밝혀야 =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에 대한 심리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이들의 트라우마 상처는 깊어만 간다.

#. 이태원에서 20대 딸을 잃은 한 어머니는 그날부터 귀도 잘 들리지 않고 피곤하고 목소리도 가라앉았다. 뭘 먹다가도 딸이 생각나 눈물이 난다. 환상을 보기도 한다. "엄마 나 왔어"라며 예쁜 모습으로 아른거린다. 요즘도 꿈을 꾼다. 서랍장 영정사진을 열어보고 울고 있다. 꿈 속에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라도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한다. 남편과 사별하고 곱게 어렵게 키웠다. 철들어 "엄마 호강시켜 줄거야. 걱정하지마"하고 동생들 용돈 몰래 챙겨줘 든든했는데 없으니까...

(정부에서) 문자가 온다. 뭐라고 가끔 오는데 지워버린다. 상담받는 것도 지친다. 먹고 살아야 하니 우울증약을 먹으면 처지고 눈만 감긴다. 어떤 엄마는 외동딸이었는데(죽었다) 자기가 빨리 병에 걸려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막 울면서...

윤 대통령이 TV에 나오면 울화가 터진다.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 같은 날 이태원에서 딸을 잃은 한 공무원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려고 한다.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다. 약을 많이 먹는다. 잠을 못 자니까 수면제하고 항우울제를 주더라. 그런데 용량보다 많이 먹는 것 같다.

몸을 쓰는 새로운 일을 배우려고 한다. 남은 애도 있으니 그 애를 봐서라고 뭐라고 해야겠고.

우리가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유가족들이 의문점을 가지는 것들을 빨리 답해달라는 거다. 만나달라고 해도 만나 주지도 않는다. 대통령실은 묵묵부답이고 경찰이나 소방에게 의문을 제기한 것들에 대한 답변이 없다. 거기서 홧병이 난다.

위태위태한 분들이 주위에 몇분 있다. 아들이 생전에 잘했나 보더라. 한참 (모임에) 못 나오고 술로 살더라.

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한 운영진은 27일 "참사 초기 가족들이 모일 수 있게 연락처나 장소를 만들어주지 않고 오로지 정신과 치료, 트라우마 치료받으라는 말만 했다. 형식적이고 도움이 안됐다"며 "잠을 청하면 사랑하는 아들을 잊을까. 미안해서 억울해서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재난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 토론회에서 "국정조사는 정쟁으로 파행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족들이 진정 알고싶었던 것들은 단 한가지도 밝혀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구체적인 대응상황이 유가족들이 가장 알고 싶은 부분이다. 가족이 어느 장소에서 사망했으며 어떻게 시신이 이송됐는지, 응급처지는 제대로 받았는지, 신원확인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왜 희생자들은 분산시켜야 했는지 등 밝혀지지 않는 의문점들이 많다고 여긴다.

유가족협의회는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법적 정치적 책임을 밝히기 위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정쟁에 휘말리지 않을 독립적 조사기구를 요구한다.

[관련기사]
"유가족 의문점 공백으로 남아"

박광철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김규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