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엄벌주의 기반' 종합대책에 우려 전달

주요 대학들 학폭 전력 정시 반영 확대 추진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교폭력(학폭)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가해 학생 처벌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인다. 교육계에선 과도한 엄벌주의는 학교의 교육적 기능 상실, 소송 증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피해 경중에 따른 맞춤형 처리, 집행유예 형식의 기재 방식 도입 등 다양한 대안이 제기되고 있다.

시도교육감협의회는 29일 입장문을 내고 "새로운 학폭 예방 종합대책은 단순히 국민적 관심을 의식한 단편적, 근시안적 대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지난 24일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린 '학교폭력, 사이버폭력 예방 캠페인'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와 김종기 푸른나무재단(청소년비폭력예방재단) 명예이사장 등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이들은 또 "학폭 발생 시 처벌과 병행해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화해조정 프로그램 운영을 대폭 확대·강화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학부모와 법률적 개입이 과도하게 이뤄지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교육감들은 "새 학폭 대책은 피해학생이 2차 가해 등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피해학생 보호 방안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후 행정심판 증가 = 이는 교육부가 준비 중인 종합대책이 학폭 징계 전력 대입 반영 등 '엄벌주의'에 치우쳐 교육적 해결보다 법률적 개입 증가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학폭은 가해학생 처벌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가해학생의 진정한 사과에 기반을 둔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 화해와 치유, 갈등 조정 등 일련의 교육행위가 수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2020~2022년 전국 학교폭력 조치사항 불복절차 현황'을 보면, 가해 학생의 불복절차 청구 건수는 2020년 587건(행정심판 478건, 행정소송 109건)에서 2022년 1133건(행정심판 868건, 행정소송 265건)으로 2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행정심판·행정소송 집행정지 신청건수도 346건에서 649건으로 증가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행정심판과 소송 등 학폭 조치 사항 불복이 증가하는 배경으로 징계 전력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기재와 대입 반영 등을 꼽는다.

교육부는 2012년에 발표한 '학폭 근절 종합대책'에서 학생부에 학폭 전력을 기재하도록 했다. 기재 이전인 2011년의 행정심판 청구 건수는 0건이었다. 학폭이 대학입시에서 영향을 미치면서 법적 다툼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주요 대학들 정시 반영할 듯 =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에 따르면 현재 4년제 대학의 86%가 수시모집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학폭 징계 전력을 반영한다. 반면 정시전형을 실시하는 162개 대학들의 경우 4곳(3%)만 반영 중이다.

교육부는 정시모집에도 학폭 징계 전력을 반영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 중이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고려대·연세대·건국대·국민대·중앙대·한양대 등이 정시에 학폭 징계 전력을 반영하기로 했다. 또 성균관대·서강대·이화여대·한국외대 등도 교육부 대책이 나오면 이를 충실히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교육계에선 학교가 소송판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6일 발간한 '학교폭력 조치사항의 대학입학전형 반영 확대 과제' 보고서에서 "대입이 학생의 인생에서 구직과 경제소득 등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조에서 학교폭력 조치사항을 대입 전형에 전면 반영할 경우 발생하는 부작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학교와 교사의 중재로 교육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간의 학폭 관련 소송이 현재보다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도교육감협의회는 교육감들은 학폭 유형과 사안의 '경중'을 고려한 사안별, 개인별, 발달단계별 맞춤형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경미한 사안은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지속적·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폭력 등 중대한 사안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행유예 성격의 학폭 기재 절차를 두자는 제안도 나온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변호사는 "성인 범죄 처벌에 집행유예가 있는 것처럼 학폭에도 예외규정을 뒀으면 한다"면서 "일단 학생부에 기재하되 일정 기간 동안 다시 폭력을 저지르지 않고 피해학생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면 기록을 삭제해 입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 가해학생을 사후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피해학생의 회복에도 효과를 볼 수 있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한편, 교육부는 이달 말 예정이던 '학폭 근절 대책' 발표를 다음 달 초로 연기했다. 이는 국회 교육위원회가 31일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진상조사를 위한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한데 따른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폭 대책 수립은 3월 말까지 하고 국회 청문회에서 주신 의견을 반영해 4월 초에 발표하는 것으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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