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에 따르면 첨단산업 초강대국 도약을 위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바이오 미래차 로봇 등 6대 핵심사업을 지원한다고 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반도체 공급망(소재·부품·장비), 바이오헬스, 지능국방, 재난안전 등에 수백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공급망은 최근 대일본 외교에서 보듯이 국내 반도체산업 침체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 바이오헬스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리며 여기에 포함됐다. 모두 12가지씩이나 되는 과제 속에 첨단 하드웨어 굴뚝산업은 거의 다 들어가 있으나 소프트웨어(SW)를 필두로 하는 두뇌산업은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세계 반도체시장 규모는 530조원 수준이다. SW는 그것의 4.7배에 달하는 2500조원이다. 바이오헬스시장보다 더 크다. 북한 무인기 탐지 실패와 이태원 재난 대처 실패에서 보듯이 데이터통합 관련 SW 실력의 밑천이 백일하에 다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SW 분야가 6대 사업에서 제외됐다. 큰 문제다. 반면 중국은 자국 7대 기술 중 거의 절반이 SW에 속해 우리 전략보다 한발 앞섰다.

지능형 국방과 재난안전을 위해 정부가 강조하는 부분은 인공지능(AI)이다. AI는 SW보다는 상위 응용기술에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AI층을 받쳐줄 하부층이 우리나라에서 빈칸이라는 사실이다. 그 하부층은 전부 SW다.

AI의 하부 인프라가 빈 상태에서 AI 층만 공사해봐야 사상누각이 될 게 뻔하다. SW와 AI 간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매우 적은 것도 국가 전략 수립에 큰 걸림돌이다. AI는 숲 속 나무 한그루에 지나지 않지만 SW는 울창한 숲에 해당한다. 나무 한그루와 거대한 숲을 동격으로 보는 것은 오산이다. 숲이 없다면 그 어떤 나무도 고사하고 말 것이다.

AI상층 받쳐줄 하부층 SW는 빈칸

자동차를 구성하는 전체 부품 중 바퀴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초등학생 정도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동력 없이는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자동차에 엔진이 가장 중요한 부품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또한 엔진에서 생산된 동력이 바퀴로 전달되지 않고는 추진력이 실리지 않으므로 동력전달 기능을 갖는 트랜스미션이 엔진 다음으로 중요한 부품이라는 사실에도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자동차에서 그 다음으로 중요한 부품은 무엇일까. 그건 분명히 바퀴일 것이다. 바퀴 다음으로는 운전 방향을 조절하는 조향장치다.

컴퓨터 엔진 기술과 동력장치 기술에 각기 해당하는 운영체계와 데이터베이스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미국이 바퀴에 해당하는 AI에 신경 쓰는 것은 이해가 된다. 알파고를 예로 들어 보자. 알파고가 위력을 발휘한 이유는 AI 기법의 우수함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구글의 독자적 안드로이드 운영체계(엔진에 해당)와 구글의 독자적 데이터베이스엔진(트랜스미션에 해당. 그 이름도 초고속 스포츠카 경주 포뮬라1을 지칭하는 F1이다), 이 둘이 SW로서 알파고의 하체를 견고하게 받쳐줬기 때문이다. 알파고를 바퀴에 비유하는 근거가 이제 어느 정도 이해될 것이다.

엔진 기술과 트랜스미션 기술은 모두 수입하면서 바퀴만 잘 만드는 나라가 스스로 자동차 강국이라고 부른다면 맞는 말일까. 이런 점에서 우리가 스스로 IT강국이라고 부르는 일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우리는 반도체(자동차의 하부 차대에 해당)에만 강할 뿐 IT엔진 IT트랜스미션은 물론 심지어 IT바퀴 기술까지 하나도 없다. 그것도 비메모리반도체 점유율이 전체의 3% 미만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안다면 우리가 어떻게 IT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걸 2030년 10%로 올려본들 무슨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엔진과 동력장치는 전부 다 미국 것을 그대로 들여다 쓰는 상황에서 다른 부품 하나만으로 국가의 미래가 장밋빛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여기가 바로 사상누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우리가 가장 두드러지게 약세인 곳이 바로 SW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정부는 국가 핵심기술을 내놓으면서 향후 10년 내에 글로벌 패권을 놓고 미국과 한판 승부를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이게 현실성이 있는가. 후대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면 국가 핵심사업의 판을 SW를 중심으로 다시 짜야 한다.

SW에서 앞서면 일본도 고개 숙일 것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이 일파만파 논란을 빚고 있다. 따져보면 우리가 반도체산업 위기에 몰려 소부장 일본 규제를 완화해보고자 대통령이 노력한 것까지는 좋으나 일본의 반응이 시원치 않아 어떤 성과를 거둘 것인지 판단 불가한 상황이다.

극일에 있어서 저자세 대화 대신 과학기술을 써서 한다면 SW에서 일본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 보다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SW에서 한일간 격차를 벌린다면 일본이 먼저 고개 숙이고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