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내 투자펀드가 2조엔 규모 인수

외국계 행동주의펀드 간섭 탈피 노려

주력사업 몰락으로 새 먹거리 찾아야

일본을 대표하던 기업 도시바가 주식시장에서 상장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1949년 도쿄 증권거래소 설립과 함께 히타치와 미쓰비시 등 다른 전기·전자업체와 상장된 지 74년 만이다. 1980년대 낸드플래시 반도체와 노트북 등을 세계 처음으로 내놓으면서 세계시장을 주도했던 도시바가 상장폐지까지 몰린 데 대해 일본 언론은 다양한 분석과 전망을 내놨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여러차례 분석기사를 통해 도시바가 2015년 부정회계 발각이후 내부 혼란을 겪으면서 경영개선에 골몰했지만 상장폐지를 막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도시바 매각을 둘러싼) 결론을 뒤로 미루면 실적은 한층 악화할 우려가 있었다"며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 등이 취득한 가격보다 높은 값으로 국내 투자펀드에 팔리게됐다"고 분석했다.

이에 앞서 일본 기업과 금융기관 등으로 구성한 투자펀드 '일본산업파트너스'(JIP)는 지난달 도시바 주식을 1주당 4620엔, 총액 2조엔(약 19조8000억원)에 매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JIP는 도시바 주식 인수와 함께 올해 7월 공개매수(TOB)를 통해 상장폐지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도시바 매수 가격은 역대 일본내 공개매수에 따른 인수로는 두번째 규모에 해당한다. 2020년 NTT가 NTT도코모를 3조1785억엔에 매수한 것이 최대였고, 2006년 소프트뱅크가 보다폰을 인수(1조6612억엔)한 사례가 세번째 규모이다.

도시바 주주구성은 지난해 3월 기준 외국계 투자자가 50%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싱가포르 투자펀드 에피시모캐피털매니지먼트가 9.9%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다른 싱가포르 자산운용사(7.2%) 등 행동주의 펀드가 전체 지분의 20~30%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JIP가 향후 공개매수를 통해 발행주식의 3분의 2 이상 확보하면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통해 나머지 주주로부터 주식을 강제 매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신문은 "도시바는 상장폐지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주주구성을 단순화해 충돌을 해소할 수 있다"며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져 성장 전략에 매진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도시바가 혼돈을 거듭하며 상장폐지까지 이른 데는 2015년 회계부정 사건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도시바는 당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6년간 누적 2248억엔 규모의 회계부정을 통해 이익을 과대 계상한 혐의가 발각됐다. 더구나 이듬해 원자력부문 자회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수천억엔의 손실을 입으면서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도시바는 2017년 6000억엔 규모의 증자를 했고, 이 과정에서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가 대거 참여했다.

하지만 도시바는 이후 외국계 펀드의 잦은 경영간섭으로 혼돈을 겪었다. 대표적으로 2021년 이사회 의장 등에 대한 선임안 및 지난해 2개 회사로 분할안이 번번아 주총에서 부결됐다. 도시바 전직 간부는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행동주의 펀드와의 싸움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고, 중장기적인 경영전략을 짤 수가 없었다"며 "상장폐지 방침은 회사 경영개선에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시바가 예정대로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재편하더라도 정상적인 경영개선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도시바는 그동안 실적악화와 내부 의사결정의 혼돈을 겪으면서, 백색가전 및 TV사업을 중국 기업에 매각했다. 의료기기 관련 분야는 캐논, 노트북 관련 사업도 샤프 등에 매각했다. 도시바의 연간 매출도 6조엔 규모에서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한편 앞으로 도시바의 핵심사업 부문은 발전사업과 철도 관련 설비, 일부 반도체 및 하드디스크 관련 제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도시바는 데이터 서비스 관련 사업을 새로운 영역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사가 납품한 다양한 제품으로부터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발굴하겠다는 계획이다.

오사나이 아츠시 와세다대학 교수는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도시바는 어떻게 경영개선을 해나갈지 보이지 않았다"며 "지금과 다른 모습을 보이려면 장기적인 시야에서 '도전과 실패'를 용납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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