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한 김석호 서울대 교수 "평균 국민이 충분히 고민·토론했을 때 결과"

숙의 후 큰 변화 … 비례대표 확대 27% → 70%, 소선거구제 43%→56%

"투명·공정·자율성, 가장 이상적 … 언론·정치권 무관심 가장 의아해"

국회의원, 국회 출입기자, 국민 500명 공론조사, 국민 5000명 여론조사에 이어 전문가 여론조사까지 마치면 선거법 개편 논의는 다시 정치개혁특위로 넘어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관심은 공론조사였다. 신고리 3·4호기 등 많은 공론조사에서 손발을 맞춰본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한국리서치가 다시 뭉쳤고 국민 참여와 투명성·공정성 확보를 위해 한국방송공사(KBS)가 결합했다.

권역·성·연령별 비례배분으로 모집한 500명의 시민참여단이 KBS본사와 지역총국에 모여 두 차례(5월 6일, 13일)에 걸쳐 패널토의, 전문가 질의응답, 분임토의 등 숙의과정에 들어갔다.

이 공론조사를 기획한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 김석호 교수(사진)는 19일 내일신문과 전화통화를 통해 공론조사 결과에 대해 "대한민국 평균 국민이 충분히 고민하고 토론했을 때의 결과"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번 공론조사의 특징으로 방송중계를 통한 공개와 자율성을 짚었다. 또 3가지 '놀라운 점'으로 △공론과정을 거치면서 참여자의 생각이 큰 폭으로 변한 것과 △특정 정파나 지역과 상관없는 결과가 나온 것 그리고 △언론과 정치권이 큰 관심을 보여주지 않은 것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신뢰할 만한 자료를 만들었으니 이제는 정치의 시간"이라고 했다.

공론조사에서 가장 큰 변화는 비례대표와 소선거구제에 대한 생각이었다. 1차 조사에서는 비례대표 축소(48%)가 압도적이었는데 숙의활동 이후에 실시한 3차 조사에서는 70%가 확대쪽의 손을 들어줬다. 소선거구제에 대한 생각도 43%에서 56%로 상승하며 한 선거구에서 3~5명 선출하는 중선거구제(42%→40%)를 확연히 앞질렀다.

전국기준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숙의 전후에 뒤바뀌었다. 숙의 전엔 전국 기준(38%)이 권역기준(45%)에 못 미쳤으나 숙의 후엔 각각 58%, 40%로 달라졌다. 국회의원 정수 증원에 대해서도 숙의 전엔 찬성비율이 13%였으나 숙의 후엔 33%로 늘어났다. 축소 의견은 65%에서 37%로 줄어들었다. 한편 최종보고서는 설문조사, 토론 내용 등을 정리한 후 빅데이터 분석을 거쳐 다음달 중순께 공개될 전망이다.

■참여자들이 충분히 알고 하는지 의구심이 있지 않나.

숙의와 공론화의 가장 큰 장점이 학습과 토론이다. (선거법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기는 했지만 자료집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설명 드리고 자료집, 온라인 이러닝 등 입체적으로 자료를 제공한다. 적어도 학습에 대한 걱정은 크게 안 하는 편이다.

시민참여단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 | 지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시민참여단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에서 참여자들이 분임 토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공정성, 투명성 문제가 항상 나올 수밖에 없다.

처음 설계하면서 방송을 넣자고 한 이유다. 투명, 공정하게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게 모든 과정에 대한 공개다. 뭘 공부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또 자료집과 영상들이 모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잘한 건 칭찬받고 잘못한 건 비판을 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자료집도 기계적 균형일 수도 있겠지만 각 의제마다 장점과 단점을 같은 수준에서 설명했다.

■500명 공론조사 결과의 대표성은 어떻게 봐야 하나.

시민참여단 500명이면 가장 평균적인, 대표성 있는 국민들이 모여서 양질의 여론을 만들었다라고 할 수 있다. 여론조사에서 '연동형 비례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일반인들은 사실 잘 모르면서 답변한다. 그런 것들을 가장 평균적인 국민들이 공부를 통해 어떤 여론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일종의 실험 상황에서 보는 거다. 만약에 국민 전체가 똑같이 학습하고 똑같이 토론했을 경우에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이다.

■공론조사 결과와 국민 전체의 의견 사이엔 차이가 있지 않나.

당연하다. 분명한 건 (1차 토론전 소집하자마자 실시한) 1차 조사는 일반 국민의 의견에 가깝다. 그런데 (2차 토론까지 끝난 후 실시한) 3차 조사에서는 많이 달라졌다. 대한민국 평균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고민하고 토론했을 때는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온다라는 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국회에서 결정하는 과정에서 공론조사 결과를 어느 정도 수준에서 반영하는 것이 적절한가.

숙의의 진짜 효과는 결론을 냈으니까 따라가기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서 공개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고민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 다음은 정치적 선택과 판단과 결정의 문제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단편적인 여론조사 결과나 해당 의원들과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의견을 마치 국민 전체의 의견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공론조사 결과를 통해서 이런 부분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판단의 출발 근거는 확실히 될 수 있다.

■공론조사에 일임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신고리 5, 6호기 할 때 문재인 대통령은 공론조사 결과를 무조건 수용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그렇게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판단을 해야 되는 문제다. 국민의 판단에 맡긴다, 국민한테 판단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판단을 숙의를 통해서 듣고 '많은 정보, 여론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을 하는데 굉장히 신뢰할 만한 근거로 (공론조사 결과를) 활용을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으면 어땠을까.

문 대통령의 (무조건 수용)말이 긍정적으로는 숙의의 진지함이나 엄숙함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숙의 과정에 참여하는 분들이 어떤 불필요한 부담이라든가 또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이기지 못하면 안 돼'라는 일종의 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숙의는 다른 의견에 대한 노출을 열어놓고 들어보는 거다. 만약에 '이걸로 다 결정해야 돼' 이렇게 되면 토론 과정에서 안 지려고 하는, 일종의 태도 양극화가 토론을 통해서 심해질 수 있다. 자유롭게 토론하고 룰을 지키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신뢰할 만한 자료를 만들었으면 이제 정치의 시간이다. 정치인들이 그것을 신뢰할 만한 자료라고 서로 인정하는 것부터가 정치과정, 협상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차례의 공론조사 경험으로 볼 때 이번 조사의 특징은 뭔가.

가장 큰 건 '방송'이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그 과정이 다 공개되는 거다.

이렇게 공개하면 한 분이라도 더 고민해 보시는 분이 이전 의제보다는 많았을 거고 국회가 만들어 놓은 최종적인 내년 총선의 어떤 제도에 대해서 수용성이 높아지지 않겠나 생각한다.

과거 공론조사에서 가장 큰 문제가 일반 국민들 크게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활발한 논의와 의견이 국민들한테 잘 전달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설계하는 입장에서 가장 자율성이 높았다는 거다. 많은 공론조사를 추진할 때 입장이 서로 달라 찬성과 반대가 분명해서 이 둘 사이에서 합의가 쉽지가 않다. 지금까지 모든 공론조사는 이해관계자들이 중간에 엎었다가 살아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의제는 당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당 내에서 의견이 다 같은 것도 아니고 의원님들 자신들이 처한 입장이나 가치나 신념에 따라서 전원위원회에서 봤지만 백가쟁명식이다. 그러다 보니까 중립적으로 어떤 균형적인 입장에서 자료집도 만들려고 노력했다.

입장이 둘로 딱 나뉘면 설문 문항에서도 유리한 개념을 넣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이번엔 그런 개입이 가장 적었던 공론조사였다. 10번 남짓 공론조사를 기획하고 운영해 봤는데 가장 이상적이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공론조사였던 것 같다. 다만 시간만 조금 더 주어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치게 촉박했다.

공론조사를 두세 달 만에 하는 나라는 없다. 최소한 6개월, 1년씩 한다. 시간과 예산이 더 필요하다.

■숙의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며 느낀 점은 무엇인가.

(숙의과정에서 참여자의 생각이) 많이 변해서 놀랐고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의견이 분포되는 것을 보고 또 놀랐다.

처음에 국회의원에 대한 혐오, 정치 혐오로 똘똘 뭉쳐 '국회의원 50명으로 줄여야 돼' 이런 말씀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러다가 국정과 국회를 끌어가기 위한 적절하게 필요한 수준을 생각하게 됐다. 지역을 책임지는 소선거구제 기반의 국회의원이 필요하고 책임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당리당략에서 자유로운 비례대표 의원들이 국정을 잘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는 등 의견이 많이 변했다.

더 놀란 것은 특정 정파나 지역적 쏠림 현상이 이러한 의견변화에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따지면서 토론을 하니까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큰 차이가 없었다.

가장 의아했던 것은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크게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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