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가장 편리하게 갖다 붙이는 용어가 '국민'이다. 국회 정론관에서의 각 정당 논평이나 국회 상임위, 본회의장에서의 국회의원 발언을 보면 '국민은 의심한다'거나 '국민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단정적으로 말한다. 근거가 궁금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년을 맞아 "앞으로도 국민만 보고 일하겠다"고 했다. 여기에서 '국민'은 누구일까. '전체 국민'일까. '지지하는 국민'일까. 아니면 '대다수의 국민'일까.

민주당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국민 뜻에 따라 재투표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국민의 뜻'은 모 여론조사에서 나온 '간호법 찬성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간호법 내용과 파장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국민의 뜻'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국민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도가 있었다. 선거법 개편 '공론조사'다. '소선거구제+준연동형비례대표제'인 현재의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국민 여론을 알아보는 과정이다.

한국리서치-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KBS가 국회 정치개혁특위로부터 위임을 받아 성·연령·권역별 안배를 거쳐 시민 500명을 뽑았다. 사전 학습, 토론, 발제, 패널 토의 등을 거치는 동안 3차례의 여론조사가 있었다.

첫 번째 여론조사는 토론을 위해 모인 직후에 물어본 것이다. 충분한 학습과 토론이 이뤄지지 않은 채 실시한 '일반 여론조사'라고 할 수 있다.

자습에 이어 여러 번의 전문가 설명, 패널의 찬반토론을 듣고 2번의 토론을 거친 이후엔 '숙의 결과'가 나왔다. 1차 조사에서 48%였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은 3차 조사에서는 70%가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하는 의견은 65%에서 37%로 반토막났다.

이번 공론조사를 기획한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 김석호 교수는 "대한민국 평균 국민이 충분히 고민하고 토론했을 때의 결과"라고 했다. 입맛에 맞는 여론조사만을 앞세워 '국민의 뜻'으로 제시하고 지지층이나 자신의 소견을 '국민의 생각'으로 둔갑시키는 행위는 게으름의 산물이거나 불특정 다수인 '국민'을 손쉽게 떼었다 붙이는 편의주의적 태도다. 자기편만 모이는 공청회나 유리한 여론조사만을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는 '국민의 생각'을 알 수 없다. 김 교수는 "숙의는 다른 의견에 대해 열어놓고 들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 대표는 국민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