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60여년 전 청소년기를 보낸 한국인들 중에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대한 일종의 동경(憧憬) 같은 걸 느꼈던 사람이 적잖았다. 일본이 항복하고 우리나라가 36년의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게 그것 한방 덕택이었다는 생각이 순진한 머리를 스쳤던 것이다.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6분 미군 B-29 폭격기에 의해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약 7만명이 현장에서 죽었다. 그해 말까지 비슷한 숫자가 화상과 방사능 관련 질병으로 사망했고, 방사능 피폭으로 일생을 앓았던 사람이 또한 수만명이었다. 3일 후 나가사키에도 원폭이 투하됐고 상응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인류는 핵폭탄을 급한대로 먼저 터뜨려 놓고 그때는 몰랐던 핵무기의 폐해와 부작용을 두고두고 배워가야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핵무기 사용 위험은 우크라이나 전장과 한반도 주변 상공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지난 주말 G7 정상회의가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진 히로시마에서 열려 한결 뜻깊어 보였다. G7은 소위 서방선진 7개국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가 주도하는 일종의 포럼이다. 공식적인 국제기구도 아니다. 그러나 G7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코뮤니케)은 강력한 국제여론이 되어 유엔총회 의결보다 더 힘 있어 보인다. 그건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7개국이 자유시장 원칙과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단결하는 데서 나오는 힘이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발언권 신장 확인

히로시마 G7 공동선언문에서 가장 강조된 현안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규탄 및 경고와 우크라이나 지원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확대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해 지원을 호소하게 한 것은 반푸틴 국제 여론에 힘을 실어주는 효과를 노린 한수였다.

두번째 주목되는 부분은 중국에 대한 견제와 협력의 양날을 보인 것이다.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남 중국해에서의 현상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공급망 정책과 관련해서는 중국을 배제하려는(De-coupling) 것이 아니라 위험경감(De-risk)을 위한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한마디로 중국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시도하지 말고 기존의 국제법 질서에 순응하라는 요구다.

세번째는 북한 러시아 중국의 핵위협을 강조한 점이다. 특히 북한을 겨냥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통해 역내 불안을 조성하는 도발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또 러시아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위협을 중단하고 핵군축조약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고, 중국의 핵전력 증강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G7이 경제문제뿐 아니라 안보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일은 흔한 일이었으나 이번 히로시마 회의에서는 전에 없이 핵문제가 강조됐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부각시켜 핵 위협에 대한 일본의 우려를 강조함과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일본 방위력 증강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는 해석도 그럴 듯하다.

한국인에게도 이번 히로시마 G7정상회의가 의미있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가 부부 동반으로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앞에 나란히 헌화하는 모습은 그간 대통령의 한일관계 접근방식을 놓고 벌어진 많은 논쟁을 떠나서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히로시마 원폭 희생 한국인이 무려 2만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다시 되새기면서 일본이 기울여야 할 성의있는 노력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한국은 G7국가는 아니지만 인도 호주와 함께 G7정상회의에 단골로 초청된다. 특히 히로시마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G7의 현안인 우크라니아 문제와 핵안보 문제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또 부수적으로 영국 인도 호주 우크라이나 등 10개국 정상과 개별회담을 하는 등 다자회의의 특성과 스타일을 활용할 수 있는 외교적 스킬을 터득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룩한 국력에 기초해 세계무대에서 한국 대통령의 위상과 발언권이 신장된 결과다.

경제와 민주주의 더 발전하면 G7 열릴 것

G7은 1973년 미국 슐츠 재무장관이 주요국제회의에 앞서 영국 독일 프랑스 재무장관과의 비공식 모임으로 출발했다. 그게 이듬해 지스카르 데스텡 프랑스 대통령과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의 제안으로 5개국 대통령들의 얼굴 익히기 휴양지미팅으로 발전했고, 이태리와 캐나다가 추가되어 G7이 된 것이다. 옐친 대통령 시절 러시아가 정회원으로 초청되어 G8이 되었으나 푸틴의 크리미아 침공으로 2014년 축출되었고, 지금은 G7의 비난 제1호가 되었다.

이제 한국이 G7의 문을 두드릴 때가 된 게 아닐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한국 등을 가입시켜 G11 정상회의를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흘린 적이 있다. 국가경제를 한단계 더 발전시키고 민주주의도 한단계 높이면 국격도 향상되고 G7의 문도 활짝 열릴 것이다.

김수종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