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 중 사망자 10명 중 6명이 노인층 … 면허 소지자 증가, 가해자 1위도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통계관리를 시작한 1970년 이후 가장 적은 2735명으로 집계됐다.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1970년 3069명에서 1991년 1만3429명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이후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높아지고 정부의 노력이 합쳐지면서 2013년부터 10년째 매년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교통사고 피해자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고령 운전자 증가로 노인층이 사망 교통사고를 가장 많이 내는 계층으로 등장하면서 인구 구성 변화에 따른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편집자 주

농협투표소 사망자 추모 합동분향소 | 지난 3월 10일 전북 순창 구림면 구립체육관에 농협조합장 선거 투표소 사망자 4명을 추모하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되고 있다. 이들은 70대 노인이 운전하던 트럭이 갑자기 덮치면서 사망했다. 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자동차 통행량이 증가하면서 사고가 증가할 거란 우려와 달리 지난해 교통사고, 특히 사망사고가 감소했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숨지거나, 운전 부주의로 사망사고를 낸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또 증가했다. 이들을 위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도로교통공단(이사장 이주민)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의 절반에 가까운 46.0%(1258명)가 65세 이상 고령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2025년에는 인구 20% 이상이 고령자로 채워지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돼 맞춤형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해마다 증가하는 고령자 사고 =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특히, 보행자 교통사고에서 고령자 비중이 높다. 지난해 발생한 보행자 사고는 모두 3만7611건이다. 이 가운데 고령자는 전체의 27.7%(1만435건)에 달했다. 하지만 사망자만 놓고 보면 933명 중 558명(59.8%)이 고령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고령자 비율이 해마다 증가한다는 점이다.

도로교통공단과 경찰청 등에 따르면 전체 보행자 교통사고 중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25.7%, 2019년 26.2%, 2020년 26.6%, 2021년 27.7%, 2022년 27.7%로 증가하고 있다. 사망자 중 고령자도 2018년 56.6%, 2019년 57.1%, 2020년 57.5%, 2021년 59.0%, 2022년 59.8%로 해마다 비중이 커지고 있다.

전체 보행자 교통사고 중 고령층 비율은 5년 만에 2.0%p, 사망자는 3.2%p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고령자 보행 사망자의 사고 유형을 보면 횡단 중 사고(344명)가 가장 많았다. 이어 차도 통행(85명), 길 가장자리 구역 통행(21명), 보도통행(6명) 등의 순이었다. 그 외 기타가 102명이다. 연령대별로는 80세 이상이 42.8%(239명)로 가장 많았으며 70~79세가 224명으로 뒤를 이었다, 65~69세는 95명이었다.

◆보행 사망사고 원인 1위는 법규 위반 = 이 가운데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횡단 중 사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횡단보도 내 사고'가 153명인데 반해 '횡단보도 외 사고'는 191명으로 더 많았다. 전체 고령자 보행 사망자의 34%가 무단횡단 중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여기에 차도 통행까지 합하면 사망자 49.5%가 교통법규를 위반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11월 일출 전인 오전 6시 14분쯤 수도권에 거주하는 70대 노인 A씨는 자전거로 빨간불인 횡단보도를 무단횡단하다 버스에 치였다.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고 있는 그를 미리 발견하지 못한 운전자가 뒤늦게 핸들을 꺾었지만 왼쪽 범퍼에 들이받힌 그는 15시간 만에 숨졌다.

이런 사고가 잦아지면서 도로교통공단에선 고령자 대상 안전 횡단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사고 다발지역을 선정해서 시설 점검과 개선작업도 펼치고 있다. 또 고령자 통행이 잦은 횡단보도의 경우 녹색신호 시간을 늘리기도 한다.

이주민 도로교통공단 이사장은 "노인 보행 사망자가 지속적으로 줄고는 있지만, 노인 인구 10만명당 7.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여전히 가장 높다"며 "노인의 안전한 통행을 위한 시설 관리와 교육·홍보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망자 감소를 위해서는 교통관련 기관의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교통안전관리와 함께 고령자 스스로도 철저한 법규준수, 무단횡단 금지와 같은 교통안전을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대 피해자이자 최대 가해자 = 이처럼 교통사고의 최대 피해자인 고령층은 다른 한편으로는 최대 가해자이기도 하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를 발생시킨 운전자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26.9%(735명)로 가장 많았다.

이는 급속히 진행되는 한국 사회의 고령화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중 고령자가 증가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운전자 중 65세 이상 비율은 2018년 9.5%에서 2019년 10.2%, 2020년 11.1%, 2021년 11.9%, 2022년 12.9%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과 통계청 자료 등에 따르면 2028년 운전면허 소지자 중 고령자 비중이 22%, 2038년에는 35%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고령운전자로 인한 사망 사고의 비율은 2012년 13.3%에서 지난해 26.9%로 13.6%p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고령자 인구 비율 증가가 2012년 11.7%에서 2022년 17.5%로 5.8%p 증가한 것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실제로 한국교통안전공단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와 비고령자가 발생시키는 위험운전행동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운전자들은 정지 상태에서 출발(급출발)하거나 조향장치의 조작(급좌·우회전, 급유턴 등)시 비고령운전자 대비 위험행동을 보였다.

실제로 지난달 18일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서 하교 중이던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 명이 차에 치여 숨졌다. 또 3월에는 전북 순창에서 트럭이 농협 조합장 투표소를 덮쳐 주민 4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치는 일도 있었다. 두 사고 모두 운전자가 70대 이상 노인이었다.

◆고령화 맞춤형 대책 절실 =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대책은 고령 운전자가 스스로 면허를 반납하면 현금 등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하지만 생업과 부족한 대중교통 등으로 자진 반납률이 매년 2~3%를 맴돌고 있어 실질적인 해법이 못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신, 고령 운전자 적성검사를 현행처럼 자가진단에 맡기지 않고 실제 주행환경에서 치르도록 하거나, 안전운전 보조장치 설치를 지원하고 교통안전 시설물을 개선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의 경우 장애물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멈추는 등 사고 방지 기능을 갖춘 특수 차량을 고령 운전자에게 지원하고 있다. 또 뉴질랜드는 의학적으로 운전 능력에 이상이 없어도 도로 주행 평가를 추가로 시행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운전 능력에 따라 운전 거리와 시간, 속도 등을 제한하는 조건부 운전면허를 발급하기도 한다.

초고령화 시대를 눈앞에 둔 한국 사회의 고령 운전자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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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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