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구속영장 심사 '50억 클럽' 수사 분수령 … '휴대폰 폐기' 정황 영장에 담아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영수 전 특별검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서에 박 전 특검의 의도적인 증거인멸 정황을 자세히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특검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데 사실상 검찰의 늑장수사를 자인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윤재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부터 박 전 특검에 대한 두 번째 구속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진행했다.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을 돕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을 받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3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오전 10시 13분쯤 법원에 출석한 박 전 특검은 취재진에게 "번번이 송구스럽다. 법정에서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장동 일당에게서 받은 돈이 청탁의 대가인가' '망치로 휴대전화를 부순 이유가 무엇인가' 등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앞서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는 지난달 3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수재,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6월 30일 첫 번째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지 한달여 만이다.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 감사위원 등으로 재직하면서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컨소시엄 관련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약속받고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 비용 3억원 등 8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다시 영장을 청구하면서 박 전 특검의 딸이 화천대유로부터 대여금 명목으로 받은 11억원을 박 전 특검과 딸이 공모해 수수한 것으로 보고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은 특히 구속영장에서 지난 2월 중순 경 정치권에서 '50억 클럽 특검' 논의가 본격화되자 박 전 특검이 공범인 양재식 전 특검보와 만나 향후 수사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휴대폰을 망치로 폐기하는 등 증거인멸과 말맞추기를 시도한 정황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 되기 직전 양 전 특검보 사무실 직원이 사용하던 노트북 컴퓨터를 포맷하고 사무실 자료를 미리 정리한 정황도 담겼다고 한다.

검찰이 이처럼 증거인멸과 말맞추기 정황을 제시한 것은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서 검찰 스스로 늑장수사를 인정한 꼴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50억원이 작은 돈이 아닌데 일반적인 사건 같았으면 검찰이 벌써 압수수색하고 빠르게 수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검찰이 시간을 줘도 너무 많이 줬다"고 말했다.

실제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2021년 10월이었지만 그해 11월과 이듬해 1월 두 차례 박 전 특검을 소환조사한 이후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새수사팀이 꾸려진 이후에도 박 전 특검에 대한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검찰이 박 전 특검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나선 건 올해 3월말. '50억 클럽' 특검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날이었다. 검찰이 박 전 특검이 휴대폰을 폐기한 것으로 파악한 2월 중순에서 한달도 더 지난 시점에서였다.

검찰은 강제수사를 시작한 지 3개월만인 6월말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피의자의 직무 해당성 여부, 금품의 실제 수수 여부, 금품 제공 약속의 성립 여부 등에 관해 사실적·법률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박 전 특검에 대한 두 번째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이르면 3일 오후 늦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박 전 특검의 신병을 확보할 경우 대장동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반면 이번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50억 클럽 의혹을 받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심에서 무죄를 받고, 박 전 특검에 대한 첫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에도 검찰은 '늑장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대장동 로비 의혹 규명 수사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대장동 본류 수사와 장기간에 걸친 자금추적 결과 등을 통해 50억 클럽의 혐의를 추출해 수사를 진행한 것"이라며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의 수사를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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