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행보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 대표의 서울관악을 출마 강행에 야권 지지층의 찬반논란과 보수층의 비난 또한 거세지고 있다. 여론조사 조작의혹이 불거진 지난 20일 이후 가히 '이정희 쓰나미'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희 쓰나미의 진원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이정희 대표 보좌관 2명이 ARS여론조사에서 당원 200여명에게 나이를 속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불거지면서부터. 이와 관련 이 대표는 21일 "문자는 당원 200여명 정도에게 보낸 것이라서 용퇴가 아닌 재경선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책임있는 자세"라고 주장했다. 게임의 룰을 어겨 근소한 차이로 이겨 놓고 다시 게임을 하자는 억지다.

관악을 ARS표본 대상자 3만300명 중 200여명이라고 하지만 응답률이 낮기 때문에 승패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자신의 보좌관이 연루되고 경선 결과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을 여론조작으로 야권연대의 틀을 깬 것이다.

"캠프 차원에서 계획한 게 아니고 우리 지역구에서만 진행된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사퇴 가능성마저 일축했다. 도덕불감증의 여지없는 노출.

이 대표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변호사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추천으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3번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원내부대표, 정책위의장을 거쳐 2010년 7월 민주노동당 대표로 선출됐다. 세인에겐 선명성과 도덕성이 뚜렷한 정치인으로 각인돼 있다.

아울러 그는 개혁적이다. 그는 지난 1월 "2012년은 무능하고 부패한 구태정치 세력이 몰락하고 참신하고 유능한 진보정치 세력이 한국 사회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당차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제 부패한 구태정치 세력의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정체성 상당 부분 실추돼

이 대표는 작년 말 민주통합당이 출범하자 선거 연대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 대표는 당초 야권 연대에 소극적이던 민주당을 향해 "연대를 성사시켜 얻는 승리의 기쁨보다 구태정치의 셈법을 벗어나서 겪는 불편함이 더 큰 분들"이라고 비판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야권연대를 위한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부정한 방식으로 이겨 놓고 출마를 강행하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후보 간 야권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경선 부정 시비가 다른 곳에서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노회찬 대변인(서울 노원병), 천호선 대변인(서울 은평을), 심상정 공동대표(경기 고양덕양갑)이 단일 후보로 뽑힌 지역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의혹이 단일화 파트너인 민주통합당 측에서 제기된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여론조사 기관이 통합진보당과 밀착해 여론조사를 주도했다면, 유사한 행태가 여러 곳에서 발생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 경선에 패한 복수의 민주통합당 후보들이 구체적인 문자 메시지를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실체적 진실은 향후 수사 등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진보정당으로서 통합진보당의 정체성이 상당히 실추된 게 사실이다.

"2012년을 점령하라"는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유언도 있듯이, 올해는 대한민국에게 아주 중요한 해다. 특히 4·11총선과 12월 대선은 그 변곡의 전환이 되는 기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보세력의 결집이다.

이정희 대표와 통합진보당이 줄기차제 주창해온 야권 연대가, 민주통합당의 '통큰 양보' 아래 어렵사리 진행돼 왔다. 이제는 야권연대가 강력한 견제 세력, 또는 수권 세력으로 가려나 했다. 그런데 판을 벌이기도 전에 뒤집어엎게 생겼다.

국민은 헌신과 희생의 자세 요청

통합진보당 역시 마찬가지다. 야권연대를 발판으로 한 원내교섭단체(20석) 구성은커녕, 1석의 지역구도 건지지 못하는 불상사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게 다 통합진보당 스스로 당 핵심가치인 도덕적 우월성을 헌신짝처럼 팽개친 대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를 향한 헌신과 희생의 자세를 보여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자세야말로 야권연대의 감동을 되살릴 기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이끌어낸 원로들의 모임 '희망2013·승리2012원탁회의'가 어제 주문한 내용이다.

윤재석 프레시안 이사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